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본 책이 담긴 상자. 심심해서 뒤지다 발견한 야한 만화책. 그 책에서 처음으로 섹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섹스'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지만, 남자와 여자의 성기가 '합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아, 그래서 남자는 나와 있고 여자는 들어가 있었던 거구나. 성에 대해 알고 싶었다. 짜릿함을 느꼈다. 자위라는 것도 몰랐으니까. 야한 것을 접할 때마다 가슴 어딘가가 짜릿한 그런 느낌만 느낀 채 살았다.


그러다 열다섯이 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폰섹이라는 것을 했다. 이어폰 넘어 들리는 모르는 남자의 자극적인 소리. 신음소리. 거칠고 저급한 욕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오르가슴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열여섯. 공부에 너무 집중해서였을까. 열일곱의 나는 고삐가 풀렸다. 좋아하는 남자와 썸이 깨지고 나는 철저히 남자를 찾았다. 사랑을 좇는 그런 것이 아닌, 그냥 욕구를 풀기 위해서. 그렇게 트위터에서 남자를 만났다. 그의 나이는 열아홉. 내 첫키스 상대는 연락처도 모르는 남성이었고,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남자를 만났다.


연애할 때는 그런 문란한 생활을 끊나 싶다가도 가끔은 연애를 하다가도 모르는 남자를 만나 섹스했다. 그렇게 1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나. 나는 정신을 차렸다.

마지막 섹스를 어디서 했는지, 마지막 섹스 상대가 누구였는지, 그 남자의 얼굴이 어땠는지,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이제 '섹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가 떨리지만, 가끔 흥분하면 감정에 취해 혼자 자위를 하기도 한다.


모르는 남성과의 만남을 즐기던 나의 과거를 후회하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군가를 만난다고 한다.

"어디서 알게 된 남자인데?" "음... 트위터." 트위터 닉네임을 들었더니 익숙한 이름이었다. 급하게 기억을 떠올리니 내가 만났던 남자였다. 그는 나랑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성인이었고, 얼굴은 가물가물했다. 음담패설을 잘했으며, 나도 그 음담패설을 들으며 섹스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친구가 그를 만난단다. 처음에는 별 신경도 안 썼다. 원래 우리는 그런 대화를 하던 아이들이었으니까.


몇 번 만나 셋이서 함께 담배를 피우고 난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보내주었다. 웃겼다. 구멍동서 모임도 아니고 그치?

친구와 그 남자는 섹스를 즐겼고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늘 생각했다. 친구도 얼른 정신을 차리면 좋겠다고.


나는 몇 번이나 친구에게 트위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자고 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친구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무언가 깨달은 건지 계정을 탈퇴했다. 그리고 하는 말.

"야동은 봐야 되니까 부계는 탈퇴 안 하려고." 이때 막았어야 했는데.


오늘 친구는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나 그 29살이랑 잤어. 어제." 망가졌구나. 완전히 망가지고야 말았구나.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하는 친구를 보고 같이 웃어야 하나, 화를 내야 하나, 그 새끼를 반 죽여 놔야 하나, 내 친구를 두들겨 패서라도 정신 차리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며 내가 처음 뱉은 말은.

"콘돔은 꼈어?" 친구는 그저 웃으며 실수로 못 낀 거라면서 넘어갔다. 전남친에게 편지를 쓰던 내 손가락은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 미친년한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친구와 인연을 끊을 각오를 하고, 진심만을 담아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화를 냈다. 내 말을 끝까지 듣고 친구가 하는 말.

"내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보다. "이 한마디에 해 줄 말을 침과 함께 삼켰고, 나는 내 과거를 보았다. 그저 철이 없고 어리다는 핑계와 변명. 변명 아닌 변명으로 하루하루 남자를 바꿔가던 나의 과거. 나는 친구에게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 할 말은 하나다.

자괴감을 느끼렴. 네 과거를 미워하렴. 최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