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꼭 합격하겠다며 돈 오백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것이 내 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시험은 늘 도피처였으니까. 자다 깼다. 꺼짐 예약 걸어 놓은 선풍기는 채 꺼지지 않았고, 베개와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 꿈을 꿨는데 기억은 나질 않았다. 새벽 두 시.

"아 씨발. 취소하는 거 또 깜빡했네."


눈 비비며 확인한 알림 센터에 와 있는 문자 한 통. 유튜브 프리미엄 결제 문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수선했고 불안정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늘 뭐 하나 제대로 매듭 짓는 꼴을 못 봤으니까. 성취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목표도 의욕도 없는 사람. 그렇다고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지난 금요일에는 실제로 본 적 없는 사람과 폰섹스를 세 번 정도 했다. 노원 산다는 그녀는 목소리가 섹시했다. 어차피 볼 일 없는 사이니까 음담패설을 내뱉으며 격렬하게 분위기를 즐겼고, 쌀 때마다 전화를 확 끊어버리고 싶은 감정이 들었지만, 뭐 하나 제대로 매듭 좀 지어 보자고 계속 되새기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지쳐서 자야겠다는 그 여자에게 나는 자고 일어나면 연락하라고 말했다. 다시 혼자가 된 방에서 멍을 때리다 나는 카톡을 탈퇴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옷장에 청바지 하나 없고 신발장에는 운동화밖에 없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착한 남자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던 그해의 나. Tinder였는지 글램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언젠가 어느 어플에서 만나 알게 된 여자와 연락할 때도 그랬다. 나는 '다른 어플남'과 다르다고 어필했다. 내 목적은 맹세코 섹스가 아니었으니까. 가슴 간질거리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멀쩡한' 여자들이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 그녀들은 내가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는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해 크리스마스. 나는 여자와 섹스하지 못했고, 스치듯 지난 인연들의 연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나 말고 다른 남자가 있었다.


익숙해서. 그런 전개가 너무 익숙해서 별 감흥도 없었다.'ㅋㅋ 네 여자친구가 전에 소개팅 어플했던 거 알고는 있으려나' 속으로 생각하며 위안 삼았다. 좆도 찌질하게.


다시 돌아와서 지금. 나는 뭘 하려고 하는 걸까. 이 글은 참회록일까 수필일까. 모텔만도 못한 다섯 평짜리 골방에서 무얼 쫓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시험이 끝나면 다음 도피처는 무엇이 될까. 언젠가 편의점 앞에서 함께 맥주 깠던 그 여자애는 자기 삶을 꼭 영화로 만들 거라고 했는데. 미지근한 내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면 팔리지도 않을 것 같아서. 내 삶은 내 이름만큼이나 미지근하다.

아, 나도 뭐가 됐든 매듭 좀 짓고 싶다.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