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술을 먹은 후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간만의 술자리에 주량을 넘겼었나. 어느 정도 취해있었다. 택시에서 잠깐 졸았다. 눈을 떴다. 취해 있다고 해도 내가 우리 동네를 모를까. 전혀 우리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등이 서늘해졌다. 내 직감이 틀리길 바라며 조심스레 택시 속 정적을 깼다.

기사님 여긴 저희 집 가는 방향이 아닌 거 같은데요?

조용히 있어 씨발. 진짜 좆됐구나.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새끼가 날 강간할까. 아니라면 내 장기를 적출해 하나하나 경매에 올리기라도 할까. 여러 잡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지금 내가 달리는 차 안에서 문을 열고 굴러 떨어진다면?

만약 그렇다 한들 바로 차를 세운 후, 나를 질질 끌고 가서 트렁크에 처박는다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지만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몇 분 정도 지났나. 그 새끼는 어느 한적한 슈퍼마켓에 차를 세운 후 나더러 내리랬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고르라는 말을 덧붙 이며. 거기서 난 무슨 정신이었는지 담배를 하나 사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적한 슈퍼마켓에 내가 사려는 담배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대충 아무거나 골라 피웠다. 피우던 담배만 피우는 나였지만, 알 수 없는 막막한 내 미래가 도저히 그려지지 않아서. 그냥 다 내려놨던 거 같다.


그리고 다시 택시에 탔다. 탈 수밖에 없었다. 개미 하나 안 보이는 한적한 이 동네에선 도망갈 곳도 없을뿐더러, 여기서 내가 탑승을 거부하거나 도주를 한다면... 음... 그냥 살해당할 것 같았다. 간결하고도 짧은 죽음 엔딩으로. 차를 타고 이동한 지 몇 분 정도 흘렀나. 도중 난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놈은 거의 다 왔으니 참으라고 했고 난 급하다며 재촉을 했다. 최후의 발악이었다. 결국 어두운 골목길에 있는 공중 화장실을 얻어냈다. 영화 같은 걸 보면 주인공이 꼭 조그마한 창문으로 탈출하던데, 애석하게도 이 화장실에는 창문은 무슨 개구멍도 없었다.


난 여기서 결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선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네게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너의 컬러링이 울렸다.

왜인지 넌 내 전화를 안 받을 것 같았다. 노래의 후렴이 다가올수록 심장은 지진이 나고 있었다. 그때 네가 전화를 받았다. 마치 영화처럼.

제발 여기로 와 줘. 나 납치당했어. 제발.

금방 갈 테니까 주소부터 보내. 얼른. 난 주소를 붙여넣기해서 보내고 화장실 칸에 숨어있었다. 1분이 1시간 같았고 너무 무서워서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네가 빨리 와달라고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알람 소리가 울렸다. 그래. 꿈이었던 거다. 베개는 눈물인지 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액체로 젖어있었다. 너무 무서웠고, 앞으로 다신 택시를 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다시 눈을 감았다.

너를 보고 싶어서. 하지만 그 꿈을 다시 꿀 수는 없었다. 내가 그 끔찍했던 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던 이유는 네가 내게 와준다고 했으니까. 다시 꿈으로 들어간다면 이번에는 정말 잔인하게 망치로 머리가 부서졌을지도, 몸이 찢겨 조각났을지도, 그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지 모르지만, 네가 보고 싶었으니까.


얘기를 너에게 한다면, 넌 어떤 표정을 지으며 내게 어떤 말을 해줄까. 너에 대한 내 마음이 너무 커서 부담을 가질까. 아니면 내 마음을 너에게 다 뺏겼다는 걸 알고 기세등등 날 부릴까. 무서운 꿈에서 깼다고 현실이 휘황찬란한 건 아니지. 내겐 또 다른 가지각색의 무서움이 공존하는 거고. 그래. 아무튼. 꿈이라 다행이다. 다행인 걸까. 다행이다. 울리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