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남자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잘생겼다, 멋지다, 깔끔하게 생겼다, 인기 많을 것 같다, 여자 많을 것 같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 등등...

나열한 수식어 중 최고의 칭찬은 '너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겠지.

아마 모든 남자들이 듣고 싶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들으면 진짜 기분 좋은 말은 따로 있다.


한국이 독일을 이긴 날 나도 역사를 썼다. 한창 러시아 월드컵에 관심이 쏠릴 때. 우리나라는 독일을 2:0으로 이기며 새로운 신화를 썼다. 잘된 일이다. 잘된 일이긴 하지만 내게 축구는 뒷전이었다. 나는 당시 외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펍에서 혼자 칵테일을 한잔하며 경기를 보고 있었다. 안주는 따로 안 시켰고, 내어주는 프레첼을 두 번 정도 리필했던 것 같다. 외국인들이 많았다. 다들 축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한국인도, 독일인도 아닌 사람들이 독일전 축구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나는 분위기에 취하지 못했다.


습관이 문제다. 그냥 술만 먹고 나오면 될 텐데, 축구나 보고 집에 와서 자면 될 텐데, 늘 여자를 찾는다. 구석진 자리에서 친구와 둘이서 술 마시며 축구 보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어둑한 실내 속 조명을 받은 여자는 얼굴이 웬만큼 못생긴 게 아니면 안 예뻐 보이기 어렵다. 맞은편에 앉은 그녀 친구는 그 조명 아래서도 쉽지 않았다. 타이밍을 계속 잡으려고 했다. 마침 그녀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무슨 자신감과 확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축구 무조건 우리나라가 이겨요. 딱 제 느낌이 그래요. 마음 편하게 둘이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요. 여기 너무 시끄럽다.


그녀는 타이밍 잡아 친구를 보내겠다고 했다. 초면에 그리 적극적인 모습을 보니 다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보내고 다시 가게로 들어온 그녀가 말을 걸었다.

근데 몇 살이세요?

이름은?

왜 혼자 왔어요?

아~ 오빠 근데 진짜 잘 쌩'겼어요. 그날 나는 그녀와 번호도 교환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내 이름을 알려 줬지만, 나는 그녀 이름을 묻지 않았다. 나보다 두 살인가 세 살 어렸던, 이름 모를 그녀와 그날 침대에 누워 함께 축구를 봤다.


후반 80분쯤이었나. 그녀 하는 말. 오빠 우리나라 이긴다며~ 질 거 같은데?

기다려 봐. 이길 거야. 그러다 영화처럼 연장전에서 우리나라는 한 골을 넣었고,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한 골을 더 넣었다. 축구에 관심 없던 나도 가슴이 쿵쿵 뛸 정도였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축구가 끝났고 티브이를 껐다. 그녀 하는 말.

오빠 이제 나한테 집중해.


나는 비랑 뭐가 있나 보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저녁. 하필 차를 두고 와서 버스를 타야 했던 날. 이미 구두에는 물이 다 들어갔고, 바지 밑단도 다 젖은 상태였다. 머리만큼은 절대 사수하자는 마음으로 우산을 덮어쓰고 정류장으로 갔다. 뭐지. 눈을 깜빡이고 다시 봤다. 예뻤다. 당시 상황이랑 분위기, 불빛을 감안하고 봐도 예뻤다. 번호를 자주 묻고 다니는 나지만, 여태껏 비 내리는 날에 누군가에게 번호를 물어본 적은 없었다. 불쾌한 날씨에 누군가 말을 건다면 기분이 나쁠 테니까. 하지만 그날은 물어봐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번호를 묻고, 번호를 받았다. 다음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했다. 데이트하기 딱 좋지 않냐고 전화를 걸어 보았다. 흔쾌히 수락하는 그녀. 어제 비 정말 많이 내리더라구요. 옷도 다 젖고. 조심히 들어가셨어요?

어제 바로 연락 올 줄 알았는데.

왜 오늘 하셨어요.

어제는 좀 바빠서. 근데 번호 왜 주셨어요?

경계도 없이.

뭐 그런 걸 물어. 잘 쌩'겨서요. 애인은 없죠?

있으면 물었겠어요?


술 마시기 싫었지만, 회 좋아한다는 그녀를 위해 자그마한 이자카야에 갔다. 둘이서 모듬회 대짜 하나에 사케 한 병 시켜서 먹었다.

사케는 처음이었지만 소주보다 낫더라. 그녀에게는 내 이름도 알려 줬다. 번호는 뭐 진작 알고 있을 것이고, 나이는 동갑이었다. 첫 만남에 어쩌다 전애인 이야기를 했다. 미친 거지. 술을 마셔서 그랬던 걸까.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전애인과 헤어진 이유가 내 경우와 비슷해서 반가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와 연애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룻밤 같이 보내는 사이로 오래 보고 싶다는 감정이 컸다.


일단 잤다. 독특한 섹스가 아니라 기억에 남을 만한 무언가는 없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그녀 장골 부분에 타투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안에 싸도 된다고 반복하던 그녀의 멘트?

발목 잡힐까 봐 절대 안에 싸지는 않았다.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섯 번 정도 더 봤다. 그날은. 그녀와 섹스한 그날은. 잘 쌩'겼어요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확신하게 된 날이었다. 건대멋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