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벌써 해가 바뀌었어요.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언제부턴가 나는 울지 않았다」로 앞서 여러분들을 찾아뵀었던'정'이에요. 투고하고 나서도 부족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업로드될 줄은 몰랐어요. 편집자님께서 글을 너무나 매끄럽게 퇴고해 주시고 업로드까지 해 주셔서 상당히 기뻤답니다. 이번 글도 그리 되면 좋겠네요.
그럼 이제 제 이야기를 좀 해 볼게요.
「언제부턴가 나는 울지 않았다」는 사 년 전 여름에 쓴 글이에요.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저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됐어요. 하필 그 힘든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까지 하늘로 보냈죠. 정말 힘들었어요. 어린 시절로 돌아가 평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어리면 누구라도 저를 도와줄 것 같았으니까. 하다못해 친척들이 저를 데려가 주기라도 할 것 같았으니까. 매일매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나를 눌러오는 걱정에 숨이 콱 막히는 기분 아세요?
그런 무형의 것들에 시달리며 폐인처럼 두 달을 보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더는 이렇게 살아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아둔 돈도 바닥나고 있었고, 무엇보다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어요.
무작정 일을 시작했어요. 몸이라도 바쁘게 움직이면 잡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아서요. 딱 떠오르는 게 고깃집이더라구요. 알바몬에 올라와 있는 고깃집이란 고깃집에는 다 지원했어요.
아 정말 힘들더라구요. 주말을 제외하고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했어요. 집에 돌아와서 씻고 누우면 11시 반. 그렇게 일 년을 살았어요. 건강은 글쎄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진 않았어요. 하지만 잡생각은 확 줄어들더라고요.
엄마 기일이었어요. 그날 이후 울지 않았던 제가 또 무너지고 말았어요.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제 조금 성장했나 싶었는데. 엄마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눈물샘이 터졌어요. 다시 든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한 기분.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 봐야 뭐 하나 싶은 생각. 그런 생각에 서러워 눈물을 흘렸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원 벤치에 앉아 펑펑 울었어요.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신경도 안 쓴 채 말이죠.
그러다 누군가 다가왔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게 손수건을 건넸어요.
요즘 세상에 누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나요. 당시에는 우느라 바빠 그런 다정한 것들을 생각할 틈이 없었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내라는 말을 건넨 채 그는 사라졌어요. 답례라도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엄마가 하늘에서 저를 바라보다 안쓰러워 내려 주기라도 한 사람 같았어요. 감상에 젖을 여유가 있나요. 다시 제 삶을 살아야죠. 먹고살기 바쁜 하루하루인데 말이죠.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니까요.
인생을 살면 영화 같은 일이 생기곤 하잖아요. 제게는 그런 영화 같은 순간이 그날이었나 봅니다.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는데, 남자 두 명이 가게로 들어왔어요. 자리를 안내해 드리고 얼굴을 보는데, 어?
익숙한 거예요. 그 남자도 당황하며 저를 쳐다봤어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내뱉었어요.
어?
그때...
반가운 마음 반, 손수건을 돌려드리겠다는 핑계 반, 호기심 반으로 연락처를 받았어요. 그리고 만났죠. 관심도 없던 주말이 그렇게 기다려지더라고요. 습관인 듯한 친절, 몸에 밴 배려, 다정한 말투.
무엇보다 오랜만에 느껴 본 편안함이 좋았어요. 그와 대화할 때면 드는 안정감에 괜히 나른해지며 의지하고 싶다는 감정이 생겼어요. 이 사람에게 빠져버린 걸까요. 제가 처해 있는 상황 탓에 이 사람이 특별해 보이는 걸까요.
애인을 하늘로 보내며 결심했는데. 다시는 사랑 안 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는데. 평생 당신 하나만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며 보내 주었는데. 저는 왜 흔들리는 걸까요.
예쁨받는다는 것에 너무 어색해요. 하지만 웃기게도 예쁨받고 싶어요. 저 아직 어리거든요. 청춘이라고들 하는 20대거든요.
왜 이리 고달픈지. 사랑을 또 해도 될지. 이 사람도 저를 순식간에 떠나면 전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홀로 선다는 건 참 힘든 것 같아요. 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