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우리 그만 만나자. 솔직히 오빠 기다리는 거 너무 힘들어. 오빠의 공백이 너무나 커. 사랑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오빠가 전역하면 스물여섯, 나는 스물넷. 우리 그때가 되면 마냥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잖아. 우리 서로를 위해 여기서 그만하자. 미안해. 답장받으면 마음 약해질 것 같아서 차단할게. 잘 지내. 나도 피해 갈 수 없었던 일말상초.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사랑도 거기까지였다. 우리 사랑에는 굴곡이 많았지만, 늘그것을 잘 해결해 왔기에. 얼굴만 보면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얼굴도 볼 수 없다는 점이 절망스러웠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드는 무력감. 회의감. 상실감. 그 찐득한 감정들에 젖은 화살촉은 곧 국가로 돌아갔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도 조교 들의 고함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근무를 설 때나, 작업을 할 때나, 불침번을 설 때나. 심지어 전역을 앞둔 지금까지도.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나는 1년 하고도 절반이나 되는 시간 동안 여기서 왜 이러고 있었던 거지.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은 내게 던진 질문이다.
훈련소 때부터 어이가 없었다. 이십 대 초반인 아이들에게 조교 모자를 씌워 주니 기세가 등등해져서는, 센 척하는 모습이 그렇게나 같잖을 수가 없었다. 그래, 쟤들도 하고 싶어서 저러겠냐.
같이 끌려온 입장인데 이해해 줘야지. 자대에 가면 달라질 줄 알았다. 달라지긴 좆도. 짬 냄새 폴폴 풍기는 일병들끼리도 급을 나누고 부조리를 하고, 나이 스물하나 처먹은 것들이 '요즘 일병들 존나 빠졌네' 이런 꼴값을 떨고 앉았고.
'우리는 저런 선임이 되지 말자'고 하던 것들은 똑같이 바뀌고. 드라마 D. P. 에서나 볼 법한 심한 부조리나 구타는 없었지만, 이 집단은 여전히 더러웠다.
사회에서 별 볼 일 없는 이십 대 초중반, 아직 피비린내나 폴폴 풍기는 이들이 어릴 때부터 '노예근성'이라는 하등 쓸모없고 무식한 개념만 학습하는 바람에 같이 끌려온 노예들끼리 급을 나누고, 부조리를 하고, 타군을 무시하고, 서로 인정을 하니 마니 하는 꼴을 보면 우습고 한심하기에 짝이 없다. 맞잖아. 군대 관련 영상이나 게시글의 댓글 창만 봐도 땅개가 어떻니 해병대가 어떻니,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느니 뭐니, 공익은 인간 취급도 안 해 준다느니 뭐니. 너네가 인정하고 말고 달라지는 게 있냐.
다들 끌려와서 힘든데, 그런데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그냥 다 같이 잘 지내면 어디 덧나는 거냐.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도 군대에 있을 때, 내가 싫어하는 인간들처럼 행동했을까. 그들을 그러지 않았어야 할 텐데. 내가 그랬듯 말이다. 군대 가면 아버지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고들 한다. 부끄럽지만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아버지 생각을 이따금 하곤 한다. 이보다 더 지옥 같고 미개했던 공간에서 2년 6개월을 어찌 보내셨을까.
아무튼 이 좆같은 곳도 이제는 떠난다. 허무하기도 하다. 내다 버린 나의 1년 6개월.
아무튼 국방부의 시계도 결국 흘러가더라.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이 나라의 청춘들이여. 힘내자. 민간인(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