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요. 지금까지 살아오며 제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가끔씩, 정말 가끔가다 좋은 일이 생기면 그건 제가 특별하기에 생기는 일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행운을 부정하곤 해요. 저는 그냥 정유림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보통 여자예요.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정유림'이라는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제 본명을 썼는데, 메일을 보내려고 하니 막상 저를 밝히기가 두려워졌어요. 어릴 적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연락처도 몰라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가끔 생각나는 친구 하나가 있는데요,그 친구 이름이 정유림이었거든요. 평범한 저와는 달리 예뻤던 그 친구는 인기도 많고 성격도 좋았답니다. 어쩜 이름까지 예뻐서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요.

아름다운 유에 아름다운 림을 쓰던 그 친구 생각이 사무치게 나서, 그리운 친구 이름을 빌려보아요.

저는 보통 여자예요. 그저 그런 보통의 여자라는 말이죠. 여중과 여고를 나와 대충 성적 맞는 대학교에 들어갔고요,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졸업했어요. 나이는 스물여섯이구요, 아니다, 이제 곧 스물일곱이네요. 하필 생일도 1월이라 만나이로 따지면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가서 조금 쉬다가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 취업했는데,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적당한 일자리라는 말은 그냥 듣기 좋은 말이구요, 사실 겨우 연명해 나가는 중소기업인데, 그래도 사내 분위기가 좋고 복지도 잘 되어 있는 편이라 저는 만족하며 다니고 있어요.


연애도 몇 번 해 봤구요, 이제는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예요. 절대 안 올 것만 같던 서른이 이제 코 앞이랍니다. 어릴 때는 서른 즈음이 되면 당당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 기억이 생생한걸요.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것도 아닌데 지나고 보니 괜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고, 내 삶에 대해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어요. 쓰면 달라질까 싶어서 한번 써 보기로 했어요. 제 인생에 있어 '쓰기'란 주변 친구들이 다이어리를 쓴다며 난리일 때, 재밌어 보여서 따라 시작했다가 일주일도 채 안 되어 관둔 것이 전부였거든요. 겨우겨우 쓰고 있는 글인데 재밌으려나 모르겠어요. 그렇대도 이렇게 쓰다 보면 제가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도 전부 제 이야기만 했지만, 이제 더욱 본격적으로 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게요.


1. 대학 어릴 때부터 대학에 왜 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비싼 등록금 내면서까지 공부하고 싶은 무언가가 없었고, 제 가슴을 뛰게 할 만한 동기도 없었거든요. 차라리 웹소설에나 나올 법한, 좋아하던 옆집 오빠가 명문대에 진학하고 이사를 가서 주인공도 그 오빠의 후배가 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는, 그런 일이 제게도 벌어졌다면 공부에 의욕이 생겼을까요. 이런 헛소리나 하는 것을 보니 다시 돌아가도 저는 여전할 것 같긴 해요. 대학에 왜 가야 하냐고, 그냥 안 가고 일찍이 취업이나 준비하고 빨리 시집가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엄마에게 처음 꺼냈을 때, 엄마는 헛바람이 들었냐고, 이상한 소리하지 말라고, 너라도 대학 가서 엄마 한 좀 풀어 달라고, 엄마는 대학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갔다며, 그렇게 간절히 부탁하는 엄마를 보니 차마 대학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 없었어요. 그렇게까지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막상 대학에 안 간다고 한들 제가 할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엄마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던 탓일까요. 일 년이라도 열심히 공부해 보자 싶어서 공부를 제대로 시작했어요. 남들처럼 밤을 새가며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 수험생' 소리 들을 정도로는 했던 것 같아요. 제 성적에서 갈 수 있는 대학은 인서울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인서울이라고 내세우기는 부끄러운 정도의 대학이었고, 엄마는 그런 나도 자랑스러웠는지 동네방네 딸래미가 대학 붙어서 서울로 간다며 자랑하고 다니셨어요. 대학에 붙기는 했다마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어요. 대단한 학교에 합격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대학에 붙었다고 해서 정들었던 나의 동네를 떠나는 것이 싫었거든요.

"엄마, 나 대학 꼭 가야 되나? "


2. 스물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노? 대학교 가면 얼마나 좋은데 그라노. 대학교 가서 잘쌩긴 남자친구도 만들고 그러면 얼마나 좋노. 서울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제? 원래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에 가야 된다 안 그라나. 어릴 때부터 넓은 세상에서 살아야 시야가 넓어진데이. 엄마가 우리 딸 유학은 못 보내 줘도 서울서 지낼 생활비랑 학비는 충분히 대 줄 수 있으니까 걱정 마래이. "간절한 부탁처럼 들리던 엄마의 말에 저는 대학에 가기로 했어요. 사실 뭐,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기 싫은 대학이 엄마에게는 평생의 목표이자 한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저의 상경과 스물이 시작되었어요. 살면서 처음 가 본 서울은 낯설었어요. 낯설다 못해 어려웠어요. 그래도 싫지만은 않았죠. 걱정했던 것보다 좋았거든요.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몇 학년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저에게 18학번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어요. 18학번 정유림.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죠. 머나먼 나라에 가서, 아무도 모르는 어느 나라에 가서 이름과 시민권을 새로 발급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저의 스물은 그렇게 시작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