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8 그녀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손님으로 온 사람이 다짜고짜 사적인 말을 건넨다면 내가 직원의 입장이라고 해도 당황스러울 테니까.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아 어제는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아니다. 한숨도 못 잔 건 아니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들었을 뿐, 잠은 잘 잤다. 나는 늘 이렇게 과장이 심하다. 식빵을 사려고 빵집에 들를 때는 발걸음이 무거울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빵집 방문의 목적이 식빵 구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어서였을까.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우선 처음부터 급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사실 부족했던 나의 용기를 애써 합리화하는 꼴이지만, 나는 데이트 신청 따위는 꿈도 못 꾸고 그녀의 이름이라도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목표가 낮아지니 부담도 덩달아 줄어들었다. 빵을 다 계산하고 나서 그녀의 이름을 물어봤다. 웃으며 이름을 알려 주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말해 주는 황의 얼굴에 나는 당장이라도 고백을 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이 좋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첫눈에 반해버려서 당신을 보기 위해 매일 식빵을 사러 온다, 나는 당신과 데이트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말이었고, 나는 끝내 말을 내뱉지 못했다.

황예은. 예은. 이름조차 아름다웠던 그녀와 사랑하고 싶었다.


02.14 요 며칠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일기를 쓰지도 못했고, 빵집에 들르지도 못했다. 빵집에 가고 싶었다. 예은이 보고 싶어서였기도 하지만, 그 식빵 맛이 아른거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직원의 외모로 손님을 끌어들인 뒤에, 나중에는 빵 맛에 중독되도록 설계해 놓은 것인가. 아무튼 갓 나온 식빵이 먹고 싶기도 했고, 예은도 보고 싶었다. 해가 질 때쯤 방문했던 터라 식빵이 전부 품절되어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빵의 재고가 한가득 남았다는 사실이 악재로 다가올 예은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식빵이 넉넉해서 기분이 좋았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아서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일주일만이지만 예은에 대한 나의 감정은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그간 얼굴을 못 봤던 탓인지 황을 대하는 것이 전보다 쉬웠다.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한다며 초콜릿을 주길래 하나 받아 왔다. 아, 오늘이 밸런타인데이였구나. 이 초콜릿이 나만의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02.15 순간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은 행동인지 의문이 들어서 온종일 상념에 잠겼다. 행동에 옳고 그름은 없다마는. 그러게나 말이다. 게다가 이 모든 고민이 무슨 대단하거나 철학적인 무언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는 점이 허탈하다. 심지어 이미 시작된 사랑도 아닌, 채 피어나지도 않은 사랑에서 비롯된 고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사랑과 호감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어디까지의 무례를 허용할 수 있는가.


02.17 예은과 약속을 잡았다. 며칠 동안 했던 고민의 결론이 나왔다. 우선은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 싶었다. 나는 예은에게 마음을 바로 고백하지는 못했다. 예은에 대한 나의 감정은 이미 사랑하는 사이와도 같았지만, 예은은 나를 그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괜찮은 손님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쉬는 날이 언제냐고, 그때 밖에서 밥이나 한번 먹자는 말에 예은은 다행히 좋다고 했다.


02.18 예은을 만나기 하루 전이다. 이제 12시간 뒤에는 예은과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밥을 먹고 있을 수도, 커피를 마시고 있을 수도 있다. 카페에 간다면 빵은 주문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 쓸데없는 고민인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하게 된다. 한 달이 넘도록 식빵을 먹으며 얻어낸 소득인 만큼 나는 내일 황에게 완벽한 인상을 심어 줘야 한다. 내일이 결전의 날이자 운명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