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며 손가락을 흔히들 '자식'에 빗대어 비유하곤 한다. 그리고 그 '자식'은 실제 나를 똑 닮은 2세를 뜻하는 의미에서 '자식'이기도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작품'이 그 자식으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자식은 내가 쓴 원고다. 물론 이 원고가 저 원고보다 더 마음에 들고, 어떤 원고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는 점에 대한 생각은 어디까지나 생각에 불과하다. 내게는 모두 소중한 자식과도 같은 원고이니 말이다.
유은에 대한 글을 서너 편에 걸쳐 다루었는데, 아쉬운 부분이 참 많았다. 제한된 분량으로 사랑의 전반적인 흐름과 전개, 결말까지 담아야 한다니 정작 담고 싶은 이야기는 담지 못한 채로 이야기를 급하게 전개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유은과의 연애 중에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담아 보기 위해 외전을 준비해 보았다. 이 글은 유은에게 남은 미련 때문인지, 정말 담고 싶었지만 담지 못했던 내용을 담기 위해서인지. 나의 문학 세계에 유은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는지. 궁금한 점은 너무나 많지만, 우선은 접어두고 이야기에 빠져 볼까.
지나고 나면 이 질문에 대한 해답도 떠오르고 말겠지.
2020년도 이후로는 인터넷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아주 흔해졌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나와 유은이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으로 만나 연애하는 사람'보다는 '소개를 받아서 연애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으니 어쩌면 우리는 시대를 앞서간 사랑을 먼저 열었던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우리는 인터넷 채팅 몇 번 나누다 만나게 된 사이도 아니었고, 첫 만남으로부터 2년 전쯤 한창 연락하다 그만둔 사이였다가 광화문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으니, 다른 사랑에 비해 독특한 무언가가 있었다.
체면을 챙기고자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액정 너머로만 존재하던 유은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 마치 연예인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으며, 사진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던 유은을 처음 보니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 '소유'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 그것은 오롯이 소유욕, 정욕에 불과한 감정이 아니었을는지. 유은과 당장 키스하고 싶었고, 유은과 자고 싶었다. 기억이 나지도 않는 첫사랑을 다시 만난 듯한 기분도 들었다. 육체적 관계 한번 없이 헤어졌던 그런 첫사랑과의 재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급할 수밖에 없었고,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하게 된다는 것은」에서 언급했듯, 나는 유은을 다시 만나게 된 첫날 고백까지 바로 해버렸던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날 유은과 밤을 함께 보내고 싶었지만, 유은을 가지고 싶었지만, 내가 얻어낸 수확은 겨우 손잡기에 불과했다. 오히려 유은의 단단한 진입장벽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견고한 것이 부서질 때 그 쾌감은 오히려 배가 되니까 말이다.
아, 오래도록 좋아하던 사람과 몸을 섞고 결실을 맺을 때에 드는 쾌감은 세상 어느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고 숭고하다.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지향점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욕구가 우선된 생명체이기에 원하는 이성과 교제하거나 잠자리를 가지게 되면 그 어느 때보다 감정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이 유은과의 첫 경험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그해 봄, 우리의 아지트가 될 줄은 몰랐던 이문동 자취방에서 내가 이룬 목표와 일종의 정복욕, 그리고 빚어낸 우리 사랑의 결실은. 아,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내 인생 한 줄이 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