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여자는 '한남동 놀러 온 여자'와 '한남동 사는 여자'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남동 사는 여자'는 '한남동 사는 여자'와 '녹사평이나 삼각지 언저리에 사는 여자'와 구별되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세세하게 구별하는 이유는 각각의 동네에 사는 이들은 폄하하고 차별하기 위해서가 아닌,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워 소개하기 위함이니 양해 바란다. 이야기에 앞서 나는 해당 글을 「압구정 여자」가 업로드되기 한참 전인 어느 날 쓰고 있다. 해당 게시글이 업로드되고 난 후에 나는 또 평생 얻어먹을 욕을 다 얻어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난 인연에 대한 비하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힌다. 평소처럼 나의 여자관계와 그것에 엮인 몇몇 이야기를 쓴 글에, 나를 스친 인연들이 살았던 동네 하나 더 추가한 것일 뿐이니 말이다. '압구정'이라는 지명 때문에, '한남동'이라는 지명 때문에, '신이문'이라는 지명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면 지명은 신경 쓰지 말고 읽어 보기를 바란다.

그럼 평소와 똑같은 글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한남동에 놀러 온 여자와 한남동에 사는 여자는 은근히 구별하기가 쉽다. 한남동에 놀러 온 여자는 '한남동 주민인 척'하는 모습이 너무나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본인의 가치를 더 높여 주기라도 하는 걸까.

다들 최선을 다해 '척'한다.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무릎까지 오는 가죽 부츠를 신고, 해가 다 지고 난 저녁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한남동이 이태원과 가까워서일까. 이태원에서 재미 좀 보다가 질린 사람들이 죄다 한남동으로 넘어왔는지, 어설프게 외국물 먹고서는 교포나 유학생인 척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사람들은 대개 한남동에 '놀러 온'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 중인 그녀와의 첫 만남은 오롯이 나의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가게 이름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 아파트 이름이 들어간 어느 브런치 가게에서 식사 약속이 있어서 자리를 가지고 나오는데, 진한 보라색 람보르기니 우루스 한 대가 창문을 살짝 내리고 있었다. 사실 그 정도 고급 자동차는 서울에 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서 특별한 느낌은 들지 않지만, 늘 빨간색이나 노란색 슈퍼카만 보다가 흔치 않은 색을 보니 신기했던 나는 장난감 코너에 간 아이처럼 그 차에 다가가 구경했다.

"혹시 제 차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을까요?" "아, 아닙니다. 차가 너무 예뻐서 그만 실례했습니다." "어디까지 가요?" "네?" "근처 가시면 태워다 드릴게요."


그날 나는 차를 가지고 왔음에도 지금 아니면 평생 이런 차 못 타 볼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의 차를 얻어 탔다. 차 안은 향수 냄새인지 방향제 냄새 때문인지 무척이나 좋은 향기로 가득했고, 그녀의 차는 부모님 사업 성공의 부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스무 살 때 만났던 은영의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중견기업의 회장님쯤이 되려나, 나도 이런 차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니, 얼마나 돈을 모아야 이런 차를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쯤 그녀가 내뱉은 한마디는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저도 이런 차가 꿈만 같았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저기 건널목 앞에 주차된 페라리를 빤히 구경하고 있으니까 창문이 열리더라구요. 어찌나 창피하던지 하하. 그때 차에 타고 계셨던 분이 저를 차에 태워 주셨어요. 겁도 없었죠. 한 바퀴 드라이브를 하고 오는데, 그분께서 해 주신 말씀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핵심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 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이제는 제가 그때 그 차주분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는데, 아까 차를 빤히 쳐다보시는 모습이 저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요. 그쪽도 아직 안 늦었어요. 한번 포기하지 말고 미쳐 보세요. 5년만 미치면 세상이 달라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