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도 동네에 따라 모이는 사람들이 다르다. 우스갯소리로 다들 '성수동룩', '을지로룩', '홍대룩'이라는 말을 하니까 말이다. 각각 동네마다 보이는 사람들은 저마다 비슷한 분위기를 지니고, 또 어떻게 알아서 잘 모인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는 어떤 동네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아무래도 건대멋쨍이라는 필명 때문에 나는 무엇을 해도 건대앞 이미지를 벗을 수 없을까. 동네마다 모이는 사람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대충 알겠다마는 그들이 얼마나 다른지, 무엇이 다른지, 저마다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이번 이야기는 총 세 개로 구성될 것 같다.
그럼 첫 번째 이야기, 압구정 여자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강남과 압구정 로데오는 별 차이가 없지 않느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거리 차이가 얼마 안 난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 두 동네에 모이는 사람들은 명백히 다르다. 스무 살이 되고 강남에서 놀던 친구들이 철 좀 들면 이제 조용한 동네로 가서 노는 거고, 정신 못 차리면 나이 서른 먹고도 강남에서 놀게 된다. 반면 압구정은 돈 없는 대학생들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가기에는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여자의 경우에는 젊음이라는 이유로 접근하는 데에 별문제가 없다마는, 남자의 경우에는 그러기 어려워서. 나 또한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로데오에 처음 가 봤다.
압구정에서 놀기 위해서라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압구정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많은 사람들이고, 우리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한 사람을 보는 경우도 많다. 일전에 클럽에서 스치듯 본 남자는 이름만 대도 알 법한 유명한 연예인이었고, 그 클럽 안에서의 모습과 TV 속에서 만들어진 모습은 너무나도 달라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압구정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고 유명한 사람들이 많지만, 압구정에 어울리는 '척'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들의 비율은 생각보다 높다. 남자들의 경우 머리 스타일에는 돈을 안 쓰고 옷에만 돈을 썼는지 바가지 머리에 루이비통 맨투맨에 올백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고, 신발은 또 무슨 운동화를 신는 그런 코미디한 광경을 연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날 나와 눈 맞은 그 여자도 압구정과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하지만 압구정에 대한 기대와 그곳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욕구가 훤히 드러나는 여자였다. 형편에 맞지 않는, 몇 개월 치 월세는 되어 보이는 샤넬백과 그 안에 들어 있는 각종 명품 화장품, 저렴한 티를 감추려고 뿌린 듯한 고급 향수는 오히려 그녀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고, 그 꼴은 마치 조화에 꽃향기 나는 향수를 뿌린 것처럼 보여서.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그녀가 매우 궁금해졌다. 호감이었다기보다는 압구정에 있지만 압구정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들던 찰나에 그녀를 발견한 것이었으니 반가울 수밖에. 우리는 만난 지 4시간 만에 자취방으로 갔다. 호텔도 아니고 모텔도 아닌 그녀의 자취방으로.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쉬웠다. 나는 그녀 자취방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만족이나 정복감보다는 묘한 찝찝함과 불안감이 느껴졌다.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불안했다.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갔고,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울 때, 불안감은 최고조를 찍었다.
그날 나는 그녀와 자지 않았다. 순전히 공포스러운 감정 때문에 섹스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던 빨래더미에, 난장판이 되어 있던 방바닥, 털이 몇 가닥 떨어져 있는 침대. 그러나 그녀는 왁싱을 한 상태였고, 나는 그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에 방을 나왔다. 그것이 나의 압구정 여자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