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짐작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늘 할 이야기는 쇼펜하우어의 철학 이다. 우리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끼리끼리' 어울린다. 생각과 마음이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고 그들과 소통한다. 쇼펜하우어는 내게 그런 존재다. 가치관적으로 닮은 부분이 참 많아 반가움을 느껴 쇼펜하우어를 공부했다. 물론 모든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한 사람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거나, 맹목적으로 혐오하는 행동은 하지 말자. 글 시작에 앞서 한 가지 이야기할 것이 있다. 사실 철학은 우리 삶과 가장 맞닿아 있지만, 복잡한 수식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대다수는 깊게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니까. 다들 '왜 살아가야 하는가'라던가 '진정한 행복은 뭘까'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러한 고찰을 '철학'이라는 단어로 묶어버리는 순간 거부감이 들고 어렵게 다가오니까. 철학은 그렇다. 한 사람의 생애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거울과도 같다. 나도이 게시글을 기획하며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에 담긴 명언이나 몇 개 적으며 마무리 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남기고 간 말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쇼펜하우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 그의 철학을 먼저 소개하며 글을 시작한다.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쉬운 어휘를 사용하여 서술할 테니 지루할 것 같다고 페이지를 넘기지 말자.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팬이었다. 당시 독일은 칸트의 철학으로 뜨거웠다. 헤겔이나 피히테, 셸링 등과 같이 칸트 철학을 재해석하는 철학자들이 많았지만, 쇼펜하우어는 오직 본인만이 칸트 철학을 제대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자, 그럼 칸트 철학이 뭘까?

우리 눈앞에 무언가 보인다. 오, 사과다. 우리는 그것이 사과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 우리 눈이 물체를 보고 '감각 자료'를 받으면, 우리 뇌는 '이건 사과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뇌가 해석한 정보일 뿐이다. 그 물체, 그러니까 우리가 '사과'라고 해석한 그 물체의 본질은 우리가 알 수 없다. 칸트는 그러한 물체를 '물자체'로, 우리 뇌가 해석한 정보를 '현상계'라고 정의한다. 다시 쇼펜하우어로.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칸트 철학을 그대로 계승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결국 이 세계는 우리가 보고 해석한 '현상계' 즉,'표상'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이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것 이상으로 확실한 진리는 없다.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담긴 책이 그 유명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다. 인간은 삶에 대한 의지와 욕망이 있기에 자유로울 수 없고, 따라서 인생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한 사람의 철학은 그 사람의 생애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수단과도 같다고 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은 어땠을까?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쇼펜하우어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자살했다. 또한, 쇼펜하우어의 어머니는 그가 철학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했다. 언젠가 쇼펜하우어가 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를 보고는 "뿌리? 약초 뿌리 말하는 거냐?"라는 악담을 퍼부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후 그는 어머니에게 "당신 책은 조금 있으면 사람들에게 잊히겠지만, 내 책은 먼 훗날에도 사람들이 읽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어머니와 절연하고 산다. 그런 쇼펜하우어가 살던 시대에는 헤겔이라는 철학자의 철학이 유행이었다. 앞서 쇼펜하우어는 칸트 철학을 그대로 계승한 철학자라고 했지만, 헤겔은 칸트 철학을 변형하여 계승한 철학자였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헤겔이 아니꼬웠고, 같은 대학 동일 시간에 강좌를 열어 전면승부를 겨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에는 대여섯 명도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쇼펜하우어 생애의 극히 일부분만 묘사했지만, 상당히 쉽지 않아 보인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낸 책은 판매율이 저조했고, 동네에서는 그를 광인으로 취급했다. 그러던 쇼펜하우어 인생의 반환점이 찾아온다. 한국에서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행복론」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책을 쓴 뒤부터다.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은 쇼펜하우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가 썼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도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다. 대학에서는 다시 쇼펜하우어 강의가 열린다.

그럼 그 「인생론」에 담긴 쇼펜하우어의 명언 몇 가지와 내 사견을 덧붙여 소개해 볼까?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다.: 늘 성공할 수도 없고, 늘 실패만 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번 실패하면 인생이 무너진 것처럼 행동한다. 한 번 성공하면 신이 된 것마냥 자만이 하늘을 찌른다. 미리 불행을 상상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눈앞에 불행이 명확하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결코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너무나 큰 걱정을 한다. 그리고 그 걱정에 대한 해결책을 타인으로부터 찾으려 한다. 지나고 보면 당시에 했던 걱정은 별거 아닌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쾌락과 욕망을 충족하며 산다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인간이란 그렇다.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권태에 빠지고, 권태에 빠지면 또 무언가를 갈망한다. 그렇게 다시 원하는 것을 얻으면 또 권태에 빠진다. 이렇게 일차원적인 무언가가 존재하나 싶지만, 그게 인간이다. 우리는 욕구를 절제하며 살 필요가 있다.


내 운명의 주인은 오직 나뿐이다

: 내가 늘 가슴에 새기고 사는 말이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당신은 왜 인생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만 생각하는가?

: 다들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리고 우울함을 극도로 싫어한다. 하지만,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삶은 갈망과 권태의 반복이기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내려놓는 법도 배워야 한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노예다. 노예는 늘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 하기 싫은 일이 있을지라도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만 하니까.: 주관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 다들 눈치 보기 바쁘고, 하다못해 인터넷에서도 첫 댓글 눈치를 본다. 남 생각이 왜 중요한가. 내가 그러하다면 그러한 것이지. 국가란 인간이라는 육식동물을 공격적이지 않게 만들기 위한 재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초식 동물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이것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권력층의 매트릭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극히 공감할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통찰력에 감탄만 나오는 문장이다.


이처럼 우리가 한 번씩은 들어 봤을 법한 명문장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이다. 인생이 왜 이렇게나 힘든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나왔다. 우리는 갈망과 욕구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인생이 정말 안 풀리던 쇼펜하우어도 결국 말년에는 명예를 얻었고, "내 책은 먼 훗날에도 사람들이 읽을 것입니다."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으니 이만하면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거 같다. 한 줄기의 빛이라도 보이면 그 빛을 바라보고 나아가자. 쇼펜하우어가 그랬듯 말이다. 철학이 마냥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우리는 철학자의 말을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읽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첫째 장에서 흥미를 잃어 페이지를 나가지 않을까. 이 글을 재밌게 읽은 분들이라면 이참에 쇼펜하우어에 대해 깊게 공부해 보는 건 어떨까?

여기서 마친다. 이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