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에 갔다. 책이나 한번 볼까. 파스텔톤의 표지, 그럴듯한 제목. 한국 소설 코너에서는 아닌 책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달의 신작 소설' 코너에서 명문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숨은 걸작은 알라딘에서 발견되곤 한다. 2000년대 이후로 나온 한국 소설 중 내 감정을 건드린 소설은 없었다. 너무 뻔하고 작위적이었다. 제목만 봐도 내용이 그려지고, 그렇다고 큰 울림을 주는 내용도 아니니까. 인스타에서 광고하는 소설은 너무 가볍고, 픽션이 너무 들어간 소설은 몰입하기 어렵다. 가벼운 글이 유행하다 보니 묵직한 글은 찾기가 어렵다.

현재 문학판이 그렇잖은가. 철수와 영희의 사랑 이야기보다 철수와 민수의 사랑 이야기를. 영희의 성공을 담은 이야기보다 영희의 비참한 일생을 담은 이야기가 더 잘 팔리니 말이다.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출간되는 소설책은 약 1,300~1,500권 정도. 출판계의 풍요 속 빈곤이라는 말인가. 명작은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 명문은 곧 옛글에서 찾을 수 있다. 명반은 곧옛 음악에서, 명화는 곧 옛 작가들의 것들로 회자하곤 한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명문'의 기준은 이렇다. 인간이 어떠한 일을 겪었을 때의 감정을 얼마나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는가. 인간은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일을 겪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을 왜곡된 상태로 기억한다. 따라서 '당시 느꼈던 초기 감정'을 잊기 십상이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감정도 어떠한 글을 읽으면 불현듯 떠오르곤 하는데, 이렇게 감정을 상기시켜 주는 글은 명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작가는 어떤 작가인지 아는가. 겪어 보지 않은 일을 겪은 사람 입장에서 쓰는 작가다. 당사자가 글을 읽었을 때도 놀랄 정도로 극사실적이게. 이문열 선생님의 글은 그렇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만 봐도 그렇잖은가. 엄석대는 늘 우리 주변에 있었고, 똑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시나리오로 흘러가는 일이 참 많았다. 구매하고 싶어도 구매하기 어려운 도서. 이문열 선생님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보수동 헌책방 세 곳을 돌았는데, 두 곳에서 없다고 하여 기대를 버리고 들어간 마지막 책방 구석에서 운 좋게 발견한 책. 기쁜 마음에 책값의 두 배인 5천 원을 지불하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나왔다. '젊은 영혼을 울리는 슬픈 사랑 이야기'라는 표지 말을 보고는 그저 그런 치정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열었다. 그 생각은 너무 건방진 생각이었다. 나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책에 줄을 긋지 않고 읽는 내가 처음으로 책에 줄을 그었다. 책을 읽다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인물의 감정선과 대사는 직접 엿듣는 것처럼 극사실적이었다. 책을 열 때 들었던 생각은 완전히 박살 났다. 이 이야기는 진짜 현실이구나.

그러면 줄거리를 볼까?


당시 시대 배경은 1970년대. 주인공 임형빈(이하 형빈)은 시골의 수재다. 개천에서 용이 나곤 했던 시절, 형빈은 공부를 열심히 하여 국내 최고 명문 대학 법학과에 들어간다. 대학만 바라보고 살았던 그의 두 번째 목표는 '재학 중 고시 합격'. 시골에서 교편을 잡은 채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아버지를 생각해 서라도 꼭 목표를 이루고 고향을 빛내야겠다고 생각한다. 형빈은 학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서윤주(이하 윤주). 형빈은 윤주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다. 하지만 공부만 한 시골 소년이 연애에 대해 알 리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 보지만, 차갑게 쏘아 붙이는 말투에 더는 대화를 잇지 못한다. 이름도, 나이도, 학과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나고, 형빈은 상사병에 걸린다. 그녀에 대한 단서는 단 하나. 그녀가 불어책을 들고 있었다는 것. 형빈과 같은 하숙집에 사는 동갑내기 남자 하나가 형빈의 고민을 듣더니, 당장 내일부터 불어과 수업과 교양 불어 수업에 들어가 한 명 한 명 찾자고 한다.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정도 수고쯤이야.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돌아다니지만 허탕만 치고 만다. 형빈도 슬슬 마음을 잡고 공부에 전념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형빈은 어느 날 대학 연극을 보러 간다. 엑스트라쯤으로 출연한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란다. 어?

어?

어?

윤주였다. 형빈은 연극이 끝난 후 대기실로 들어가 윤주에게 말을 걸지만,곧 윤주의 남사친들이 들어와 윤주에게 고생했다고 말을 하며 짧은 대화는 끝이 난다.


형빈은 어찌 윤주의 주소를 얻어 편지를 보낸다. 편지에 답이 없자 편지를한 번 더 보낸다. 이번에도 답이 없자 형빈은 윤주의 집으로 찾아간다. 당황한 윤주는 가란다고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형빈에게 다방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쑥맥이었던 형빈은 이제 윤주가 제법 편해졌는지 능글맞은 대화를 나눈다. 윤주도 처음과는 다르게 살가운 말투로 형빈을 대한다. 그러다 말도 놓고, 각자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제대로 된 첫 만남이자 대화가 끝이 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온다. 그렇게 대학도 종강을 한다. 다시 개강을 하고 만난 형빈과 윤주는 매일같이 데이트를 즐긴다.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 호감은 있는 사이. 하지만 윤주는 아직 숨기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형빈은 윤주의 남사친들이 거슬린다. 윤주는 주말에 수락산으로 남사친들과 단풍놀이를 가는데, 형빈을 초대한다. 정말 괜찮은 친구들이니 싫어하거나 비꼴 거면 한번 만나나 보고 그러라고.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평소와 사뭇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제안하는 그녀의 모습에 제안을 수락한다. 산을 오르는 길이 순탄치는 않다. 형빈은 산 중턱 계곡에 자리를 잡은 뒤 퍼질러 쉬자는 제안을 했고, 윤주는 산에 왔으면 정상에 올라야 한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형빈은 좀 걸으며 경치 구경이나 하자고 했고, 나머지는 막차를 놓치면 안 된다며 버스를 타자고 했다. 등쌀에 밀려 버스를 타는 도중 형빈은 돌발 행동을 한다. 버스에서 내린 것이다. 소주나 홀짝이며 홀로 걷던 도중 한 여자가 형빈을 부른다. 윤주였던 것이다. 둘은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는 키스를 나눈다.


어느 날 윤주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본인은 처녀가 아니라고. 심지어 웬 모르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심지어 대학은 원조교제를 통해 받은 돈으로 다닌 것이라고. 순결과 정절이 중요히 여겨졌던 당시, 이 말을 들은 형빈은 충격을 금치 못한다. 아직 성경험이 없고 여자 경험이 없던 형빈에게 '첫 여자친구'가 '처녀도 아닌 데다가 원나잇 경험까지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윤주는 그 말을 남긴 채로 형빈을 떠난다. 형빈은 반쯤 술에 취한 상태로 역전에 간다. 역전 사창가에 가서 늙은 창녀에게 처음을 준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괜한 복수심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본인도 똑같은 사람이 된 것일까. 형빈이 가지고 있던 '재학 중 고시 합격'이라는 원대한 꿈에 대한 불씨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여자에 빠져 있는데 학점이 잘 나올 리가. 집에서 보내 준 돈은 부족해지고, 정신도 돌아올 생각을 않고. 그러다 윤주가 이태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넘어간 언니를 둔 윤주는, 평소에도 서양을 동경하곤 했다. 형빈은 이태원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 윤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감정이 고조되어 위스키병을 박살 내고 윤주의 목을 조른다. 말리는 웨이터의 가슴을 찌르고 형빈은 기절하고 만다. 경찰서에 간 형빈은 '일류 대학 학생'이라는 간판 하나로 작일 밤 있었던 일이 '젊은 날의 실수'로 치부되어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윤주를 만나 진실된 이야기를 나눈다. 그날 밤 둘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다.


형빈은 점점 망가지고 있다. 공부는 손에 잡히질 않고, 머릿속에서는 그녀의 과거가 그려진다. 아, 형빈은 그녀의 과거를 잊고 용서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정말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우 잊을 만하면 윤주의 과거가 악몽처럼 떠올랐고, 순결이나 정조, 처녀막 따위의 단어만 봐도 모든 것을 부수고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략) 10년이 흘렀다. 윤주는 미국으로 떠났다. 형빈은 결국 '재학 중 고시 합격'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외국계 대기업에 들어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삶을 산다. 교양 있고 사립 여대를 나온 참한 여자와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형빈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나 보다. 우연한 기회로 형빈이 미국 지사로 떠나게 되었다. 가족을 데려갈 수 있었지만, 혼자만 갈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형빈은 한 늙은 여자 유학생과 어울리게 되는데, 그때 문득 윤주를 떠올린다. 형빈은 윤주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지역 신문 광고도 내 보고, 윤주가 살았던 동네에도 가 보았지만,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이맘때쯤 한국에 있는 형빈의 부인이 이혼을 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온다. 형빈은 아쉬움 하나 없이 이혼을 한다. 그렇게 윤주를 찾지 못해 허탈한 채로 어느 해변가를 걷는데 벤치에서 한 여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윤주임을 파악한다. 그렇게 둘은 극적으로 재회하고 지난 10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윤주는 참 많이 바뀌었다. 한국인이라면 치를 떨고, 10년 동안 만났던 여러 남자 탓에 사치품과 호화로운 생활에 중독되어 주제에 맞지 않는 소비를 즐기는 여자가 되었다.

(중략) 형빈과 윤주는 결혼을 한다. 다투고 화해하고 다투고 화해하고의 반복이었지만, 윤주도 이제는 정신을 차리겠다며, 좋은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했기에 둘 사이가 좀 안정되었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윤주는 다시 밖으로 나돌기 시작한다. 새로운 남사친과 파티에 가는 등, 형빈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 사이의 말다툼이 격해졌고, 윤주는 둘 사이의 관계를 전부 부정하는 말을 내뱉는다. 형빈은 권총을 꺼내 윤주에게 다섯 발을 쏘고 만다.

"그녀는 어떤 여자였을까요? 여자라는 성으로 구분된 보편적인 집단의 한예외였을까요? 아니면 70년대 초의 한국적 상황과 한참 위세를 떨치던 아메리카니즘이 우리 딸들을 돌게 해 만들어 낸 한 특수한 예외였을까요?" 나는 제법 진지하게 그 답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답은 얻어지지 않고, 임형빈이 얘기 도중에 인용한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구만이 휑한 머릿속을 떠다닐 뿐이었다.

-추락하는 모든 것은 날개가 있다_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문열 선생님은 이 소설을 어떻게 쓴 걸까. 단언컨대 이 글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절대 쓰지 못한다. 개인의 감정선 전개를 저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책을 읽으며, 글을 읽으며 속이 울렁거리고 숨이 가빠지던 적이 있던가. 매거진을 운영하며 서너 번 정도 있었지만, 책에 있어서는 정말 오랜만이다. 이 책은 내가 읽은 문학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 현시대를 날카롭게 관통하는 치정 소설이 어찌 80년대에 쓰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저 날카롭고 적나라한 감정 묘사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온 것인가.

어떻게 온 것인가. 경험?

재능의 영역?

모르는 이에게는 치정 소설, 누구에게는 치정 다큐. 겪어 보지 않은 감정을 저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문학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화자가 이문열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이문열의 관찰력과 표현력, 공감 능력은 인간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것이 아닐까.


이문열 선생님께 여쭙고 싶다.

•이 글은 정녕 다큐 아닌 소설이 맞는지요?

•이 글의 화자는 본인인지요?

•이 글을 쓴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러한 명문이 담긴 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이문열의 아픈 손가락이라니.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용 소설도 좋지만, 이 책을 다들 꼭 한 번쯤은 읽어 보았으면 한다. 이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