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서서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푸르고 밝은 것만 떠올려도 모자랄 판에, 많은 청춘들이 청춘을 아픔이나 시련, 고통, 방황이나 실패 따위와 묶어 생각하곤 한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 말이다. 조금만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더라도 그 시기는 한없이 아름다워 마땅한데, 그 자체를 향유하기보다는 다가오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모든 청춘들이 일찍이 현실에 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들 저마다의 목표와 저마다의 꿈이 있었을 것이다. 꿈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던 때가 있었을 텐데, 다들 언제부터인가 그 꿈을 접어둔 채 살아간다.
아, 그 시기가 대략 언제일까. 꿈과 목표를 접고 현실에 순응하여 사는 그 시기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주변을 둘러보면 남자의 경우에는 보통 군대에 다녀오고 난 후 이러한 '현실 순응 과정'을 겪는 듯했다. 그렇다 할 무언가를 하지도 않은 채 군대에 갔다가, 전역을 하게 되면 막막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막막해짐과 동시에 두려워진다. 이제는 진짜 현실이라는 생각에. 그때가 되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복학한 뒤 스무 살인 것처럼 노는 이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뭐라도 한다. 공모전에 참여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고. 나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조바심을 냈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NCS 준비를 했던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공무원이 될 수 없고, 우리 모두가 대기업에 입사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성공한 사업가나 자영업자가 될 수 없고, 우리 모두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스스로를 틀에 가두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남들이 인정하는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남들이 좋다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정말 스스로 원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이 인정해 준다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우리는 자잘한 것을 놓치고 산다.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을 누리기에도 아까운 시간에, 우리는 타인이 만든 기준과 틀에 스스로를 끼워 넣으려고 발악하고 있고, 그 틀에 들어가지 못해 좌절하고 절망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청춘은 아름다워 마땅하다. 아파야만 청춘이 아니다. 청춘은 아프지 않아야 한다. 아파야만 청춘이라는 흔한 가스라이팅에 당하지 말기를. 만족과 행복의 기준을 지나치게 타인에게 맞추지 말자. 비교의 끝은 자기혐오임을 명심하고, 행복의 기준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려 노력해 보자. 더는 아프지 말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