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는 '갈래요?'라고 했지만. 내가 첫 연애를 할 때 실제로 들은 말이다. 라면 먹고 가자는 말이 섹스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줄도 몰랐고, 이십 대 초반 당시 쑥맥이었던 나는 그 말이 정말 라면을 먹고 가라는 의미인 줄 알았다. 술집은 하나둘 문을 닫고 막차는 끊긴 시간.

그 여자애 집에 들어가 손과 발을 씻고 양은 냄비부터 찾았다.

출출했거든. 그러고는 진짜 라면을 끓여 먹었었다. 미쳤던 거지.


그녀는 식탁 맞은편에 앉아 라면을 '처먹고' 있는 나를 보면서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라면을 다 먹었다. 라면만 먹은 건 아니고, 나의 처음을 쓰는 날이었다.

침대에 기대 이야기하다 입을 맞추는데 뭐가 들어왔다.


첫 연애가 끝나고 한동안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 이별은 생각보다 덤덤했지만, 다시 모래성을 쌓기가 두려웠다. 어차피 무너질 모래성. 연애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건데, 괜히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취향을 엄청 따지는 사람이다. 아무리 예쁘더라도 가을에 베이지 코트를 입지 않으면 끌리지 않는다. 트렌치코트를 입으면 안 된다. 그리고 에어팟은 2세대를 써야 하며, 흘러나오는 노래는 산울림이나 이문세의 것이어야만 한다. 소주 많이 마시는 여자는 싫고,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 스파클링 와인이라도 좋으니 함께 와인 마시며 이야기 나눌 줄 아는 여자가 좋다. 영화보다 책을 좋아하는 여자에게 끌린다.


이러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굳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야 하나 싶기도 했고. 음, 그러니까 '내 취향인 사람 만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섹스?

안 해도 살 만했다. 성욕이 많은 편도 아니고, 워낙 바빴 으니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일에 미친 채로 2년을 살았다. 그러다 대학교 다닐 적 친했던 친구를 만났다. 간만에 본 친구는 예전과 사뭇 다른 느낌을 풍겼다. 이제 제법 꾸밀 줄도 알고, 왼쪽 팔목에는 코튼 팔찌 대신 직장인 월급을 몇 달이나 모아야 살 수 있을 법한 메탈 시계가 올라가 있었다. 머리카락은 바람이 불어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왁스칠이 되어 있었고, 피부에는 무언가 발랐는지 잡티가 하나도 없었다. 콧대는 원래 저렇게 높았었나 2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긴 줄은 몰랐다. 내가 알던 사람과 너무 달라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술과 이야기가 좀 들어가니 어색함도 곧장 무너졌다. 그는 전애인들과 섹스 파트너로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내게 늘어놓았고, 며칠 전 어플로 만난 여자들과 섹스를 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풀었다. 핑 돌았다. 그때 내가 든 어지러운 기분은 취기 때문일까 안주 때문일까. 내가 이 글을 투고하는 이곳. 여러 사람의 섹스가 남아 있는 이곳. 이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의 잠자리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아니, 다들 섹스를 저렇게 가볍게 한다고?

어떻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랑 몸을 섞을 수 있는 걸까. 내가 너무 보수적인 건가. 이게 보수적인 거라면 차라리 보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나쁘지 않을지도.


나는 그 첫 연애 이후 두 명을 더 만났다. 내게 있어서 이별은 완전한 안녕이고, 내게 있어서 섹스는 사랑의 결정체다. 늘 나와 취향과 성격 비슷한 사람들이랑만 사랑하다 보니, 내 연애는 늘 비슷했고 이별의 이유도 비슷비슷했다. 다른 사람들은 연애하고 싶어서 안달이라는데, 나는 글쎄다. 오랜 연애를 끝내고 나면 쉬어가는 기간도 필요하니까. 농사도 짓고 나면 일정 기간 땅을 쉬게 하는 휴경기를 가지잖아.


나는 사랑에 목마르지 않은 사람이라 사랑에 목매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섹스하기 위해 사랑하는 건 더욱 싫다. 그런 내게 사랑은 여전히 숙제다. 매번 최선을 다하지만 끝나지 않는 숙제. 정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