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지고야 말았다. 뻔한 전개. 내 사랑에 있어서 뻔한 전개. 다른 청춘의 사랑도 이럴까. 아니면 내가 저지른 사랑만 늘 이런 걸까. 그러니까 나는 또 대체재였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로 남을 수 없고, 늘 오리지널인 무언가를 대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사랑했던 누군가를 보내고 외로운 그 시기에 쓸쓸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인간. 음, 대체재로 사용되고, 망가지고, 상처받고, 버려지는 그런 사람.
이별에 사용할 말을 한참 동안 쇼핑했다.
우리 그만 만날까?
아냐. 이건 선택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미루는 느낌이야.
우리 헤어지자. 이건 너무 진부하고 딱딱하잖아. 정이 없어 우리 생각할 시간을 가질까?
이건 직관적이지 못하고 답답해서 별로.
왜 다들 이별의 운을 모두 '우리'로 띄우는 거지. 내가 힘들어서 헤어지는 건데, 나는 왜 간단한 말 한마디를 입에서 떼지 못하는 거지.
몇 번을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이 기분. 상대방이 야속하다. 이 상황이 버겁다. 신이 있다면 원망하고 싶다. 내가 오롯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을 내게 시련으로 내려 주었으면 한다. 나는 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만 했으니까. 뽀얀 복숭아를 탁자 위에 두면 곪고 으스러져 벌레의 밥이 되듯, 나도 이제 곪고 물러터져 단단히 망가진 상태.
나는 아플 때마다 글을 썼다. 그리고 다시는 글을 쓰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슬픔은 곧 영감의 원천이라던데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툭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이 감정.
누가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면 눈물을 쏟을 것만 같다. 이번 사랑은 무언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진실을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 나도 조금 성장했구나 싶었다. 그랬으면 했다. 그런 줄 알았다. 감수를 하든 이별을 하든 사랑을 하든 나는 다시 아파야 한다. 나는 다시 아프다. 사형을 앞둔 사형수는 제정신이 아니듯, 그 아픔이 얼마나 나를 망가뜨릴지 아는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어떻게 살았는데.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데. 겨우 벗어났는데.
당신이 보여 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면 행복하기도 바빠서 아플 시간도, 아픔을 줄 시간도 없으니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왜 사랑한다고 했냐.
왜 그렇게 나를 가지고 논 거냐.
왜 자꾸 사람을 못 믿게 만드냐.
왜 내 사랑은 늘 엉망인 거냐. 힘이 들 때면 수화기를 들어 애타게 찾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마저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더라. 기껏 나의 감정을 토해낸다고 한들 열린 상자는 닫히지 않으니까. 처음으로 돌아와 다시 이별 멘트를 쇼핑할 시간. 이제는 결정할 시간. 마음에 드는 문구를 고르고, 그래! 우리 헤어...
씨발. 모르겠다. 바른양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