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2) 우리 사랑 이야기는 여느 연인들의 사랑 전개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와 내가 어떻게 사랑을 키우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해 추억해 본다면, 그날 음악 제목을 알려 주겠다는 핑계로 연락을 보내고, 비슷한 류의 음악을 추천해 주겠다고 말하며 나의 소중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 주고, 상당히 앳돼 보이던 그녀가 성인인지 미성년자인지 한번 떠 보기 위해 주말에 시간이 괜찮으면 재즈바에 가서 칵테일이나 한잔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2) 돌아온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나에 대해 호감이 없지는 않았다는 것과 성인이라는 것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던 참신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예술적 취향이 겹치는 데에서 오는 반가움 때문인지, 나에 대한 이성적인 호감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호의적인 태도를 보니 나는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게 밖에서의 나는 우스꽝스러운 배스킨라빈스 유니폼에 걸맞는 사람이 아니며, 나는 나이대에 비해 잘 꾸밀 줄도 알며 남들처럼 그저 그런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에, 언젠가 성인이 되고 중요한 날에 입으려고 사 놓은 세미 정장을 꺼내 입었는데, 오히려 그 꼴이 더 우스꽝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2) 뭘 그렇게 꾸미고 왔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평소에도 이렇게 다니는 편'이라고 답했다. 음악이 흐르고, 술잔이 늘어가고, 너도나도 취기가 오를 때쯤 나는 그녀의 이름과 나이, 학교를 알아냈고, 그녀의 집안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 듣게 되었다. 언뜻 들어서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나 같은 경우에는 주식 투자를 하시던 아버지 덕에 진작 알고 있었던 그 중견기업의 손녀딸이 바로 그녀였던 것이었다.
아, 신기했다. 놀랍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배경이나 조건을 보고 끌릴 만한 나이도 아니었을뿐더러 사실 내가 처음 그녀에게 빠져든 이유는 그따위 배경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 그녀의 외모와 신비로움 때문이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내뱉은 말은, 아, 정말이지 내 말문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오빠. 근데 있잖아. 나 혼전순결이야."
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2) "그걸 말하는 이유는?" "이렇게 데이트 신청한 이유도 나한테 관심이 있고 연애하고 싶어서 아니야?" "맞긴 한데 당장 우리가 자려고 만난 것도 아니고." "혼전순결을 지켜 주지 못할 거면 시작도 하지 말자 이거지." "지켜 줄 수 있다면?"
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2) 나는 지키지도 못할 말을 내뱉었다. 아니, 사실 뭐, 여자 경험이 좀 있다고 한들 스물한 살짜리가 얼마나 많았다고, 나는 사랑에 있어 섹스가 주는 쾌락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녀는 그런 식으로 나를 비꼬았고, 나는 오기 비슷한 것이 생겨서, 그래, 이렇게 된 거 한번 끝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우리가 지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이 문제로 열을 낼 필요가 없지 않아? 만약 사귄다고 한들, 네가 말하는 그 혼전순결을 내가 지켜 주지 못할 것 같으면 그때 우리 관계에 대해 다시 이야기 나누어 보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살면서 처음 만나 보는 부류의 여자였던지라 호기심과 욕구가 샘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혼전순결을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순결인 것은 확실하고, 다른 수많은 남자들도 그녀의 순결을 빼앗기 위해 발악했을 것이 분명한데 실패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그녀의 순결이자 그 처음의 순간을 내가 가져가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2) 그녀 또한 나에 대한 호감이 충분했기 때문에 '혼전순결'이니 '지켜 줄 수 있냐'느니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 터. 나는 그다음 주 주말에 그녀와 만나기로 했다. 와중에도 그녀는 평일 언제나 같은 시간에 같은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왔고, 집에 돈도 많으면서 많이 포장해 가면 되지 왜 귀찮게 매일 사 먹으러 오냐는 나의 물음에, 시켜 먹으면 와서 먹는 맛이 안 난다고 답했다. 하여튼 엉뚱했다.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무언가 본인만의 기준이 확고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듯해 보였다. 잘 가꾸어진 온실 속 화초를 보는 듯했다. 내가 그녀와 연애를 한다고 한들 그 끝은 뻔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여자와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집안이나 수준에 걸맞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을 해도 그녀와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 그녀의 미래 남편 될 사람이 참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기업의 손녀와 결혼할 정도의 남자라면 사회적 성공은 물론이고 여럿의 존경을 받을 터. 돈은 돈대로, 집안은 집안대로,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자랐을 것만 같은 가상의 인물을 그리며 드는 자격지심에, 나는 그 가상의 존재보다 먼저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는 감정이 들었다. 내가 먼저 소유하고 그녀의 처음을 가져간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하며 살 수 있을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