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공원 그 공원의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우리가 갔던 영등포의 그 공원 이름은 영등포공원이었구나. 그 공원은 영등포역과 퍽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이유로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고, 네가 평택으로 내려가기 위해 영등포역으로 갈 때마다 돈 없고 시간 많던 우리는 '산책이나 하자' '바람이나 쐬자'는 핑계를 들며 영등포공원으로 갔다. 정말 추워서 귀가 아프던 어느 겨울에도 우리는 영등포공원에 갈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도 나는 자취방으로 돌아갈 버스비는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고, 사랑스러운 나의 애인은 애인 잘못 만나 한겨울에 공원에서 떨고 있는데 와중에도 돈 걱정이나 할 수밖에 없는 나의 지갑 사정과 내 꼴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환멸이 났다.
그날 너는 내가 너를 배웅해 주고 곧장 버스를 타고 자취방으로 돌아간 줄 알겠지만, 나는 너를 보내고 나서 다시 영등포공원으로 갔다. 그 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사색에 잠겼다. 생각에 깊게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하던 너에게 반항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괜한 심술 한번 부려 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초라한 모습이 보기 싫어서, 돌아간다면 더 초라해지고 외로워지니까 도피하기 위하여 공원으로 돌아갔던 것일까. 우리의 사랑은 너무 아쉬웠다. 원래 지난 사랑을 떠올릴수록 아쉬움 섞인 실망감이 들기 마련인데, 나는 준비가 너무나도 안 된 상태에서 너를 만난 것만 같아서. 조건이 붙지 않아서 풋풋했지만, 내가 느꼈던 풋풋함이 네게는 구질구질한 무언가로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쉽고 미안하다. 성북구글싸개
대천 해수욕장 4년 전 여름, 내가 너와 처음으로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러 간 곳은 대천 해수욕장이었다. 나는 그곳에 갈 것이라는 계획이 없었지만, 너는 이미 나와 대천 앞바다를 보러 갈 작정으로 나에게 왔었다. 그날은 우리가 '아는 오빠'와 '친한 동생' 사이에서 '남자 대 여자'로 한 발짝 다가서게 되었던 날이 아니었을까. 나는 당시 대천이라는 곳이 처음이었다. 당시 막 스무 살이었던 나는 다른 지역에 갈 일도 없었다. 그런 내게 대천 해수욕장행은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왔었는지. 그날 우리는 대단하고 거창한 데이트를 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 짧은 시간이 너와 나를 연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살면서 대천이라는 곳을 그때 처음 방문했고 또 그곳을 같이 간 사람이 너라서 대천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지금은 우리가 남이 되었지만, 그래서 너와 이별하고 대천 앞바다를 보면 나도 모르게 울적해지고 네 생각이 많이 나서 짜증이 났지만, 그래. 그런 기억도 이제는 추억 속으로.
너와 주차하고 바다까지 걸어가던 그 롯데리아 앞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종종 친구들이랑 대천에 가면 너의 이름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신데렐라
내가 살던 주택 집 내가 살던 이층집 앞마당에는 감나무를 키웠다.
감나무를 보면 계절을 대충 느낄 수 있었다. 새싹이 올라오면 봄, 작은 열매가 맺히면 초여름, 주황빛을 띄기 시작하면 가을, 작게 까치가 쪼아먹은 홍시가 달리면 겨울이구나 싶었다. 장마철에는 비도 새고 겨울에는 난방비 폭탄이었지만 이런 집이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이유는 우리 집 식구 여섯이 다 같이 살았던 유일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여섯 명이 둥글게 앉아 고기를 구워 먹었던 것은 당연했지만 지금은 모이기조차 힘들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나 그 시절에 잠겨 사는 것 같다.
되돌아가고 싶고 그때 행복했었는데 싶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무언가 얹혀사는 느낌이 든다. 뛰어도 뭐라 하는 사람 없고 따끈한 노란 장판과 감나무와 함께 살았던 그때를 평생 잊기 힘들 것 같다. 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