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참 다양하다. 단순 체험이나 관광 따위가 여행의 주된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행의 의미가 무언가의 시작이라든가 끝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 그해 겨울, 제대를 앞두고 떠난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군복무를 끝마친다는 의미에서 적절한 '전역'이라는 단어를 두고 왜 굳이 '제대'라는 그릇된 단어를 사용했는가 하면은, 어릴 적부터 들었던 '제대'라는 단어가 더욱 익숙해서였기도 하지만, 잘못 표기된 단어가 주는 맛이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 싶다.
예를 들어 음식에 대해 떠올릴 때, '자장면'이라는 바른 표기보다는 '짜장면'이라는 잘못된 표기가, '돈가스'보다는 '돈까스'가 더 먹음직스럽게 느껴지듯, 제대라는 단어도 전역이라는 단어보다 더 묵직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쌍팔년도 시절이나 개구리 전투복을 입고 군생활을 했던 옛 군대에 비하면 요즈음 군생활은 생활 측면에서나 복무 개월 측면에서나 애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다들 오기 싫은 공간에 온 것이고,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진 요즘에는 동기나 선후임 간의 정이 예전만 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훈련소와 후반기 학교 시절을 제외한다면 일 년 하고도 반년이 넘도록 붙어 있었던 것이 나의 동기들이니, 동기 간의 정은 끈끈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사회에서든 군대에서든 나 먹고살기에 바빠서, 다른 사람들의 사정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다른 선후임들의 동기 간 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해서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나와 우리 동기들만큼 가깝게 붙어 지내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으니, 우리 동기들 간의 사이가 얼마나 각별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남는 것은 동기밖에 없다며, 제대 전에 동기들끼리 좋은 추억 하나 쌓고 오자는 말을 그해 여름이 오기도 전부터 하곤 했다. 제대를 한참 앞두고 '이별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마냥 신이 났다. 그 여행을 다녀오면 비로소 제대가 한 달도 채 남지 않게 되는 것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유뿐이라는 생각에, 동기들은, 적어도 나는 그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었다.
바다?
계곡?
추워 죽을 텐데 무슨 계곡 타령이냐. 바다도 추울 텐데. 그렇다고 서울 구경을 갈 수는 없는 법이잖아. 차라리 서울로 갈까?
무슨 서울이야. 그렇다고 해서 그럴듯한 관광지에 가기에는 1박 2일이라는 기한이 우리 선택의 폭을 줄이도록 만들었고, 어디로 가야 하나 몇 개월 동안이나 고민하다 휴가를 일주일 앞두고서야 급하게 정한 여행지는 어느 시골 외딴 산길에 위치한 산장이었다. 앞서 여행의 의미가 무언가의 시작을 알리는 경우도 있고 끝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는데, 그 의미가 무엇이 되었든 떠나기 전에 설레는 감정이 든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마음이 무겁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닌 유배일 테니 우리네 여행도 다를 것은 없었다. 여행의 기대 때문인지 다섯이서 다 먹지도 못할 양의 고기를 사고, 몇 잔만 마셔도 머리가 빙빙 도는 양주를 몇 병이나 사고. 감귤 박스 서너 개는 채울 정도의 음식을 든 우리는 산장으로 갔다. 그 숙소는 택시를 타고 농로로 한참 들어가야만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우리를 데려다주시던 택시 기사님께서도 그 동네서 택시 일만 십수 년을 했다마는 처음 와 보는 공간이라고 하셨을 정도이니, 얼마나 외딴곳에 위치한 산장이었는지는 대충 이해가 가리라 믿는다.
그 숙소의 첫인상은 썩 좋지 못했다. 과거에는 예식장으로 사용되었다던 건물이 꼭 어느 폐 정신병원 흉가와 비슷해 보였고, 곳곳에 놓인 조형물은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리 말고 다른 이용객이라도 몇 있었더라면 조금 덜했을 것인데, 아무리 한적한 산장이라고 한들 우리가 갔던 때는 비수기 중에서도 비수기라고 할 수 있는 한겨울이었고, 제아무리 숙소 가격이 성수기의 절반도 안 된다고 한들 가족이나 연인들이 그곳을 찾을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배정받은 숙소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양옆이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비밀 요새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고, 평생 도시에서만 살았던 내게 마당에 모닥불이 있는 독채 산장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짐을 대충 풀고 불부터 지폈다. 흔히들 '캠프파이어'라고 부르는 모닥불 지피기.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냇가에서 캠핑 비스무리한 것을 하며, 모닥불을 피우고 감자를 구워 먹은 적이 있다. 그 행위가 불법이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불을 피우다 보니 그 어린 시절 내 모습과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며,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해 주시던 것들을 이제는 오롯이 혼자 해야 하는 때가 왔다는 사실에, 성인이 된 지는 이미 몇 해가 지났지만 이제서야 진정한 성인이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거 없는 모닥불 지피기에 불과했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 모닥불은 모닥불 그 이상의 것이었으리라.
해가 지기도 전부터 숯을 달구고 불을 지폈던 탓에 우리는 원하는 때, 곧바로 고기를 먹을 수가 있었다.
요즘은 고깃집의 수도 워낙 많고, 숙성 고기니 생고기니 하면서 종류도 한둘이 아닌데, 내가 꼽는 최고의 삼겹살은 따로 있다. 하나는 집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식구들과 둘러앉아 구워 먹는 삼겹살이고, 다른 하나는 캠핑 가서 숯불에 구워 먹는 삼겹살이다. 그렇지 않아도 많아 보이던 고기는 구워서 내놓으니 그 양이 더 많아 보였고, 술에 밥까지 들어가니, 아, 분명 행복해야 마땅한 상황인데 나는 부질없고 쓸데없는 상념에 잠기고야 말았다. 다들 군복무할 시절을 회고해 본다면 이러했을 것이다. 막 입대했을 때야 제대가 기다려지고, 제대하는 그날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지만, 군에 익숙해지고 정작 집에 가야 할 때가 오면 제대라는 것이 막연해지며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곤 했을 것이다. '비로소 제대해야 할 때가 되면 떠나기 싫어진다'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는 그럴 일 없을 것'이라며 단언하고 코웃음을 쳤지만, 막상 제대를 앞두고 나니 나의 심경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래, 씁쓸했다.
나는 제대를 하고 나서 할 일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군에 있는 동안 나태함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탓에 사실 누구보다 제대를 기다려도 모자란 입장이었지만, 나는 그날 밤, 하필 이별 여행을 떠난 그날 밤, 그토록 깊은 상념에 빠졌었는지.
술자리에서 일찍 빠져나와 침대에 누워 마음 통하는 동기 하나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던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하지만, 전역모를 쓰고 부대 정문을 나올 때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