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생긴 고정관념인지 모르겠지만, 해돋이와 새해라는 단어를 보거나 들을 때면 가장 먼저 정동진이 떠올랐다. 어릴 적부터 동해와 정동진, 강원도 언저리의 동네에서의 일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지만, 교통편도 많지 않은 지역에 살던 어린 내가 그곳에 갈 방법도 마땅치가 않았고, 어떻게 정동진에 간다고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다 싶어서. 정동진은 늘 나의 기대 속에만 머물러 있는 그런 지역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에 나는 정동진에 갔다. 해돋이를 보러 혼자 떠나는 것이라면 삼척이나 태백과 같은 더 조용한 지역을 찾았겠지만, 지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애인과 함께 떠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볼거리가 조금 더 있다는 정동진으로 갔다. 명동의 크리스마스부터 정동진의 새해까지 애인과 함께 보낸다는 생각에 설레서 감정이 고조된 나머지 가슴 한편이 간질거렸고,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애인은 옆에서 우리의 여행 계획에 대해 조잘거렸다. 12월 31일 오전에 우리는 정동진으로 떠나 1월 1일을 그곳에서 보내고 다음 날 첫차를 타고서 다시 서울에 돌아오기로 했던 계획이었으니, 거의 1박 2일에 가까운 2박 3일짜리 여행이었다.


나와 애인이 정동진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가 12월 26일쯤이었는데, 몇 개월 전부터 정동진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사람들이 많은 탓에 기차표와 버스표는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동진과 동해가 서울 근교도 아니고, 기차를 타고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곳이라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없는 법이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애인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 표를 사면 되겠다." 당연히 표를 사야 하는 건 맞는데, 표가 없으니 못 사는 것이 아니냐며, 나는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느냐는 눈빛으로 애인을 쳐다보며 물어봤다.

"어떻게? 지금 모든 표가 매진이야." "표를 사 놓고도 못 가는 사람들이 있을 거 아냐. 중고나라를 찾아볼게." 똑똑한 나의 애인 덕에 우리는 운이 좋게도 서울서 강릉 가는 기차표 두 장을 구했다. 구한다고 구했는데, 같은 시간에 강릉 가는 표는 찾을 수 없었고, 나와 애인은 30분 간격을 둔 기차를 따로따로 탄 뒤에 강릉에서 만나야 했다.


사람들은 귀엽다. 귀엽다 못해 웃기다. 별거 아닌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즐긴다. 동네 뒷산에도 매일같이 뜨는 것이 해인데, 1월 1일에 뜨는 해는 무언가 다른지 의미를 부여하고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빌기 위해 멀리 떠난다. 그냥 똑같은 하루 중 하나일 뿐인데 주말만 되면 일을 쉬며 늘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무슨 기념일이 되면 무슨 무슨 이유로 저마다 무언가를 만들고, 꾸미고, 선물하고, 축하한다. 나는 누군가 부여한 의미를 알게 모르게 즐기고 누리며 살아왔지만, 새해 맞이 해돋이라든가 신년을 기념하는 무언가는 평생 살며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해 정동진행은 더욱 설렐 수밖에 없었고, 나는 소풍 떠나는 아이처럼 들떴다. 나도 이제 주류에 편입된 것만 같아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겨울. 서울서 강릉 가는 길은 무궁화호보다 몇 배는 빠르다는 KTX를 타고도 족히 두 시간은 가야 될 정도로 멀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여행 갈 채비를 해서 피곤했을 나의 애인은 나보다 먼저 기차를 타고 눈을 붙였다. 따뜻한 커피에 담배 한 개비 피우다 보니 내가 타야 할 기차도 역으로 올 시간이 다 되었고, 나는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의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었다. 나는 혼자였고 나는 그 세상의 독백 한 장면에 외로이 있는 주연 배우였다. 기차가 덜컹거리고 시끄럽던 소음이 서서히 줄어들고, 나는 내 앞에 놓인 물통 하나와 관광지를 소개해 놓은 책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다가올 일출에서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나 싶은 고민, 나는 왜 그리도 정동진에 가고 싶어 했던 것인지, 그러니까 정동진에 가서 일출을 보고 새해를 맞으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은 정말 이루어지는 것인지, 만약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탓할 사람이 없다. 정동진에서 뜨는 해는 내일이 되면 사라지니 말이다. 나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해는 내일이면 사라지고 없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그 해도 바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세상 사람들이 비는 소원은 무엇일까.

어떤 대단한 소원이길래 무리를 해서라도 명소에 가서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비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궁금증을 해결해야 했다. 그 순간 기차 속 내 세상에는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흑백의 공간 독백 속에 나온 사람은 앞좌석에 앉아 계시던 어느 아주머니였다. 의자를 빙글빙글 돌릴 수가 없었기에 내가 앞좌석 의자와 의자 사이 틈에 얼굴을 밀어 넣은 채로 대화해야 했으나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내일이 새해니까 해돋이 보러 정동진에 갑니다." "보통 일출을 보면서 소원을 많이 빈다고 하더라고요?" "많이 빌지요. 작년에 우리 아들이 장가가서 애가 생겼거든. 이제 곧 복덩이가 세상에 나오는데 우리 손주 건강하게 나올 수 있게 이번에도 이렇게 정성스럽게 기도하려고요. 할매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


그때부터였다. 갑자기 무슨 소설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기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소원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휩쓸리지 않은 채 소원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사람은 딱 두 명이 있었는데, 한 시간이 넘도록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한 남자와 나. 딱 그 두 명이 전부였다. 사람들의 소원은 정말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항암 치료가, 누구는 자식의 시험 합격이, 누구는 본인의 입시 성공이, 누구는 키우는 강아지의 건강이, 누구는 로또 당첨이. 일 년에 한 번 비는 소원인데 그것을 타인을 위해 빈다니. 나를 위해 소원 빌어 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이 들 때쯤-아, 설국이었다. 서울에서는 녹아 없어진 눈이 강원 지역에 가까워지니 보이기 시작했다. 가득 쌓인 눈. 창문 밖으로 보이는, 본래의 모습이 과연 어떠하였을지 알 수 없는 타지의 낯선 풍경은 전부 눈으로 덮여 있었고, 마치 설산을 연상케 하는 장엄함도 물씬 느껴졌다. 문득 나를 위해 소원을 빌어 준 이가 있었을까, 나를 위해 소원을 빌어 줄 이가 있을까, 싶은 궁금증이 떠올랐고, 나는 먼저 강릉에 도착해 있을 애인만큼은 나를 위한 소원을 빌어 주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후에 확인한 애인의 소원은 결국 '나'나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잠깐 동안은 실망과 회의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우리 이별의 원인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강릉. 강릉의 겨울바람은 서울의 것보다 매서웠다. 크리스마스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추위에 우리는 몸을 웅크렸다. 겨울이라 그런지 강릉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별거 없던 강릉역은 정말 그게 전부였고 초라했다. 강릉역에서 내렸지만 우리는 강릉에 볼일이 없었기에 이동을 하려고 했으나 새해가 되기 전에 정동진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정동진에 하루 먼저 가 있게 된다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은 정동진역이 익숙해져서, 해돋이를 보더라도 가슴 벅찬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된다면 나는 빌기 위해 기억해 둔 소원을 몽땅 까먹을 것 같아서, 정동진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 눈을 떴다.

"일어났어? 마침 깨우려고 했는데. 해돋이 보러 가야지. 한 시간 뒤에 해가 뜰 거야. 서둘러 가자" 애인과 나는 해돋이를 보러 갔다. 그때 빈 소원은. 그때 빈 소원은.

'올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였다. 그해 정동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