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로 수능을 5번 쳤다. 열아홉일 때 누구나 치는 수능 1번, 이십 대 초반 '보송보송한 시절' 2번, 군인일 때 1번, 전역 후 1번.

참 지독한 인연이다. 그래서 원하는 점수를 받았냐고?

아니, 내 커리어 하이는 군인일 적 공부를 좆도 하지 않고 엉덩이 벅벅 긁으며 쳤던 수능이다. 올해 수능에서 작년보다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해방되기로 결심했다. 이제 이 눈물 젖고 모순적인 기이한 입시판에서 떠나기로.


많이들 생각하는 것이 '성적=노력'이라는 공식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병신 같은 등호 섞인 공식을 정말로 혐오한다. 공부나 시험을 유의미하게 분석하거나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시험에는 생각보다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매우 다양하며, 그것은 통제되기 어렵다는 것을. 결국 입시에 실패한 자의 변명이다!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하는 당신보다 성적이 높을 것이다. 최상위권의 정원은 극소수니까. 내 주위에 성적=노력을 외치던 여러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은 공부에 대한 묘한 로망 같은 것이 있었다. 본인이 가진 고학력에 대한 열망과 저학력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인가, 하면 무조건 오른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곤 했다. 그런 본인은 왜 안 했을까. 하지만 나는 공부를 해도 '그저 그런 성적을 받는 사람'들을 너무나잘 알고 있다. 내가 그랬고 남들도 그랬으니까. 어느 방식으로 공부를 하던, 얼마나 시간을 투입하던, 원래 본인이 받을 만큼의 성적을 받는다. 그것이 정해져 있다.


내가 5번째 수능을 준비할 때, 국어 과외를 했었다. 과외생들의 모의고사 등급은 전부 달랐다. 한 명은 5등급 한 명은 4등급 한 명은 3등급. 각자 다른 성격, 다른 성적대, 다른 독서 습관을 가진 각기 다른 학생 세 명은 내게 '소비자'이기도 했지만, 내 이론을 관철시킬 하나의 '피실험자'이기도 했다. 아, 물론 최선을 다해 열심히 가르쳤다.

가장 공부에 열의가 있었던 것은 4등급 친구. 고3이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한 이 친구는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가는 것이 꿈이란다.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으나 다시 삼켰다. 이 친구의 글 읽는 속도는 현저히 느렸고, 이해하는 능력은 보통이었다. 어릴 때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고 물어보니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한다.

그래, 기억력도 별로였다.


그러나 이 친구의 공부량은 엄청났다. 하루에 4시간을 자며 무시무시한 국수영탐 교재들을 걸신들린 듯 먹고 소화했다. 내가 준 숙제가 모자랐는지 엑스트라로 주간지를 추가해 푸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감탄했다. 몸이 2개인가?

다만 문제를 풀 뿐이지 맞추진 못했다. 내가 3시간 공부하면 할 양을 9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다. 따라서 공부의 효율은 매우 나빴다. 그래서 하루에 4시간을 자고 공부하는 것치고 진도가 잘 나진 않았다. 다만 무지막지한 시간 투입으로 효율을 커버했다. 5등급 친구는 내가 준 숙제도 잘해 오지 않았다. 애초에 타의에 의해 밀려온 듯한 친구라서 나도 그리 독촉하진 않았다. 그저 수업만 잘 듣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잘 자며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가장 독서량이 많았다. 어릴 적 삼국지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씹덕'스러운 설명을 할 때마다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굳이 대학에 간다면 사학과에 가고 싶다던 그는 뛰어난 읽기 속도와 준수한 이해력, 알고 있는 고급 어휘들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3등급 친구. 사교육 괴물. 부모님이 관심이 많으셨다. 이 과외를 하게 된 본질적인 근원. 본인은 별로 흥미도 학벌에 대한 열망도 없었으나 어쩌겠는가. 수업을 끝마치면 그는 질문할 틈도 없이 바로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모든 과목의 숙제를 쳐내는 게 힘들었는지 가끔 숙제를 안 해왔지만 이해했다. 과외 말고 각 과목당 단과를 하나씩 다닌다니, 힘들겠지. 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대학은 분명 잘 가겠지. 읽는 속도는 느렸지만 단기 기억력이 좋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하나. 수학 성적이 좋았다.

보통 이런 애들은 잘 간다. 공부도 어느 정도 하고 듣고 보는 것도 많으니까. 물론 인풋에 돈을 엄청나게 때려 박아도 그게 다 결과로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다.


나는 5등급 친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다음은 3등급. 그다음은 4등급. 4등급 친구는 어쩌면 수능 때도 4등급을 받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모의고사의 성적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거의 동일한 수능성적을 보여준다. 역전의 용사는 없다. 그냥 받아올 성적을 받거나 하락만 있을 뿐. 이들은 내 예상대로의 성적을 받아왔다. 두 친구는 1등급을 받아왔고 한 친구는 4등급을 받아왔다. 내 이론이 맞음을 느끼면서 너무 가슴이 저려왔다. 이 비정한 현실이 슬펐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한 것일까.

"저는 해도 안 되나 봐요"라고 말하며 울던 4등급 친구에게 나도 같이 눈물을 찔끔 흘려버렸다. 선생님이 병신이라서 그런 거니까 울지 말라며 나도 존나 울어버렸다. 내가 못 가르친 거라며 수업비 전부를 환불해 주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정말 슬프지만 이 친구는 아마 재수해도 비슷할 것이다. 약간 오르기야 하겠지만 그게 유의미하진 않을 거다. 가르치면서 느낀 거지만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다. 이 비통한 현실. 수능 출제자 씹새끼. 나쁜 새끼들. 수능의 처음 설계 목적이 지능이 높은 학생을 변별하기 위함임을 알고 있는가?

이렇게 노력한 애를 선별하는 과정이 아닌 것이다. 좆같은 것들. 세상을 저주했다. 백 시간 공부해도 머리 좋은 애가 10시간만 공부해도 따라잡힌다. 애초에 머리가 좋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더 많은 양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아는가?

'쎈 B 스텝' 두 장을 두 시간 동안 푸는 학생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슬프다. 이 비통한 현실이. 이 일을 계기로 '성적은 곧 노력이다'라고 말하는 것들을 더욱 혐오하게 되었다. 자기들이 공부를 안 해봐서 잘 모르는 건가. 아님 진짜 재능충이라서 남들을 이해 못 하는 건가. 그런 건가. 이런 사례를 눈앞에서 보면 정말 비참하고 슬퍼진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이 친구는 인서울 상위권 대학 논술에 최초합해 버렸다. 목표 대학은 아니었지만, 대단한 결과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머지 학생들은 전부 재수를 한다고. 이게 시발 뭔가 싶다. 이 친구가 진짜 열심히 한 게 논술에서 증명된 거겠지?

노력=성적이니까. 하지만 논술은 공부해 본 적이 없단다. 뭐지 싶지만 이게 진짜 입시인 것 같다. 이 맛이다. 맛있네... 고맙다며 애플워치 하나를 선물 받았다. 다 선생님 덕이라는데 내가 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나도 논술은 써 본 적도 없고 가르쳐 본 적도 없다. 오로지 한 마리 야수 같은 정시 파이터였을 뿐... 이자식... 나보다 네가 훨씬 낫다. 대단한 자식. 넌 사실 누구보다 특별한 아이였구나. 내가 몰라봤다.


내 믿음이 깨진 건가. 노력=성적, 결과 공식에 분노하는 내가 잘못된 것인가. 노력은 어찌 보면 결과로 나타난다. 이 친구의 노력은 충분히 그 대학에 입학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 노력이 꼭 뜻대로 나오진 않는 것 같다. 뭐가 맞는 건지 나도 이젠 모르겠다. 수능을 치른 모두들 다들 행복하자! 개같은 입시판을 떠나 진짜 인생을 살자! 나도 이제는 행복을 찾아 떠날 것이다. 이젠 나도 이곳을 잘 모르겠다. 다들 화이팅! 수능중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