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죽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이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죽었는데 정신이 왜 말짱한 건지, 이런저런 잡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법도 한데, 머리가 아프지 않다. 모두들 내가 죽었단다. 기절한듯이 자거나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에게 던지는 "얘는 온종일 잠만 자냐? 죽은 거 아니야? " 식의 장난식 멘트가 아니라 정말로. 생물학적으로 죽었다고 한다. 숨졌다는 말이지 뭐.


[2] 어휴 죽겠다, 죽겠다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진짜 죽어버렸네. 말이 씨가 될 줄 알았으면 좋은 말만 하고 살걸.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일어나 보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당황한 눈빛이 느껴졌다. 시간이 좀 지나니 앰뷸런스가 왔고, 어디론가 끌려갔다. 이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느낌?

어딘가 꽉 막혀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다였다.


[3] 그렇게 한 사흘 정도 지내니 세상을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내 눈으로 직접 나의 시체를 보고서는 죽음을 실감했다.

아, 남이 보는 나는 저랬구나. 확실히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 있을 때보다 좋은 점은... 중력의 영향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것과 남들은 나를 볼 수 없다는 것?


[4] 내 장례식에는 누가 올까. 숨이 붙어 있을 때도 가끔 하던 생각이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가 오면 좋겠다는 내 바람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 딱 적당히 왔다.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도. 죽어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결혼을 안 하고 죽었다는 것과 연애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누군가에게 빚 지고 죽지 않았다는 것. 나의 죽음이 타인에게 피해로 돌아가면 안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새끼들 사람 마음 안 좋게 언제는 나 죽으면 장례식장 수육이랑 국밥 배터지게 먹을 거라고 오히려 좋다더니 정작 와서는 아무것도안 먹더라.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친구도 발견했다.

언제는 남자가 태어나서 세 번만 우는 거라고 센 척이란 센 척은 혼자 다 하던 놈이. 내 죽음에 그 울음 한 번을 사용해 주는 건가?

영광이다 임마.


[5] 한 십 년 만에 보는 친구도 있었다. 번호 바꾸고 뭐 하고 사는지도 몰랐던 친구인데 쟤가 어떻게 왔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십 년이 지나도 옛날 얼굴이 남아 있네.

"야 너는 도대체 어떻게 알고 왔냐? 잘 지냈냐?" "......"

아, 죽으면 내 말이 안 들리나 보다.


[6] 딱딱해서 굳어버릴 것만 같던 분위기를 나름 풀어 보려 장난을 좀 치려 했지만 죽은 내가 내뱉은 말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고, 내가 하는 어떤 행동도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 이런 걸 직접 느끼니까 참. 조상에게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하고, 신점 따위를 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살아 있을 때 종교 안 가지길 잘했다. 이상한 무당한테 돈 안 쓰길 잘했다. 아닌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거면 종교나 가져 볼 걸 그랬나.


[7] 그래서 나는 대체 왜 죽었을까. 아직 해야 할 것도, 이루어야 할 것도 많은데.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일도 많은데. 언젠가 한참을 고민했던 '인간은 행복할 때 죽는 게 나을까, 불행할 때 죽는 게 나을까'에 대한 질문의 답은 나온 것 같다. 나는 아직 젊은데. 아직 못 해 본 것이 너무 많은데. 아쉽다. 아쉬워서 미칠 지경이다. 어차피 죽을 줄 알았으면 더 과감하게 살아 볼걸.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 알았으면 남 눈치 좀 덜 보고 살걸. 뭐 어쩌겠나. 이젠 죽은걸. 며칠 동안 내 삶을 회고하며 체념했다. 이제 내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든, 어떻게 되든, 언젠가 내가 노트북에 미리 써둔 유서를 읽지 않았으면 한다. 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