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라서, J라서. 이따위 진부한 편 가르기 치우자 이제. J가 89% 나오는 나는 즉흥적인 것을 좋아한다. 즉흥적이라고 하면 정말 즉흥적인 거. 어느 저녁 을지로에서 술 마시다 바다가 보고 싶어 택시 타고 을왕리까지 간 것처럼. 그때는 MBTI 따위를 아는 사람 하나 없었을 때니까. 아무튼 그날도 그랬다.
그 남자의 글이 좋았다. 어쩌다 읽은 그 남자의 글이 며칠 동안 떠올랐고 이틀 동안 스무 번은 읽었다. 그 남자가 쓴 글에는 그가 과거에 만났던 다른 인연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아픈 사랑을 해 본 사람에게 드는 연민이었는지 호기심이었는지 둘다 아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계산을 꽤 오랫동안 한 것 같다. 뭐라고 보낼지, 어떤 답장이 올지, 그리고 어떤 대화를 주고받을지, 그런 것까지 계산했지만, 연락을 보내기 버튼을 누른 건 충동적이었다. 고민하다 연락을 보냈다. 그쪽이 쓴 글 너무 좋다고. 나는 그 사람의 일상에 스며들고 싶었다.
지금만큼 성수동이 핫하지 않던 시절. 우리는 커피나 한잔하자며 성수동 골목길에 있는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머지않아 집에서 커피를 내려 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가 늘 들고 다니며 떠오르는 시상을 적는다는 수첩에 언젠가 내 이야기도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문학에 녹일 수 없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몰랐던 나는 아쉬워했지만, 그는 웃으며 아픈 사랑을 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는 잘 맞았다. 가끔 침대에서 서로 때리고 맞기도 했다. 이상하 리만큼 잘 맞았지만 잘 맞지 않았다. 사랑하면서도 섞이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티는 내지 않았다. 그토록 안 맞던 사람과 잘 맞다고 생각한 이유는 아마도 공통점을 억지로라도 짜내기 위한 나의 자기합리화였겠지. 막연했다. 사랑이 좋고 함께하는 것이 마냥 좋았지만 언제까지고 그따위 것들에 빠져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던 커피 머신을 치우고 맥심 커피믹스를 한 박스 사 왔다. 사 년 동안 쓰던 휴대전화를 바꾸고 번호도 바꿨다. 이번에도 충동적이었다. 그래야 새출발과 살아 있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사랑하고 이별하면 몸정이 생긴다지만 나는 그의 몸보다 글이 사무치게 그립다. 이제는 그의 문학을 향유할 수 없지만. 너무 멀리 떠내려왔지만. 어느 새벽 16절 도화지에 필사한 그의 글을 읽으며 옛사랑의 흔적을 추억한다. 그 사랑은 내게 습작이 아니었는데 왜 내 글은 아직도 그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지. 추상적인 내가 구체적인 사랑을 하고 어중간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번 주말에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야겠다. 사람 일 혹시 모르는 거니까. 정다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