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FWB 안해요. 진짜?

신대방역에서 왕십리까지. 서울에 한 달 정도 살았지만 지하철은 여전히 어려웠다. 2호선은 순환 열차라 서울을 계속 빙글빙글 돈다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으니까. 도착하기 전 상왕십리에서 잘못 내려 열차를 한 번 보내고, 다음 열차에 몸을 실어 왕십리에 도착했다. 녹지 못한 눈이 뭉쳐 보도블록 사이에 끼어 있던 날. 왕십리역 5번 출구에서 만난 그 사람. 나름 멋 부린다고 니트 한 장만 입고 핫팩으로 손을 녹이면서 갔다. 나보다 얇았던 그녀 옷차림. 추운지 팔짱을 끼고 발을 동동거리던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당연히 추웠겠지. 그날은 영하 7도였으니까. 전화할 때 보이던 경계심에 비해 허당인 면이 있어 보였다. 귀여웠다. 그게 첫인상이었다.


'NO FWB/ONS' 그녀 틴더 한 줄 소개에 적혀 있던 글.

"오빠. 나는 안 사귀는 사람이랑 스킨쉽 안 해." "내가 네 철칙의 예외 사례가 되겠네 아마도." "......" 섹스야 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스킨쉽을 하지도,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도 없는데 괜히 먼저 저러는 것을 보니까 귀여웠다. 그래서 더 장난을 쳤다.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날 섹스를 못 할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기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그날 술자리 대화는 발렌시아가가 23s/s 컬렉션 쇼에서 보인 '패션 경향 비틀기'로 시작해 '박서보의 묘법이 루이비통에 미친 영향', 이어서 '사랑하지 않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섹스'로 끝났다. 대화가 더 맛있어서 술은 조금만 마셨고, 나는 뒷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콘돔을 앞주머니로 옮겼다.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다던 남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그날 그녀 삶에 예외 사례를 써 버렸다. 주고받은 대화만큼이나 맛있는 하루였다. 장지혁


대창 첫경험 처음 낚시를 당했다. 홍대에서 장한평역까지 갔는데 만나기로 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첫 만남 전에 전화번호 공개는 좀 그렇다며 거리를 둘 때 알아봤어야 했나. 애타는 마음에 Tinder 메시지를 여러 개 보냈지만, 돌아오는 건 매치 취소였다. '얘는 참 할 짓 없나 보다.'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담배 한 대 피우며 가방 안에 담겨 있는 콘돔과 러브젤을 보는데, 이 상황 자체가 너무 병신 같았다. 뭐 하고 있는 거지.


늘 새로운 만남은 갑자기 이루어진다. 그날도 그랬다. 마침 Tinder 에서 누군가 내게 라이크를 눌렀다는 알림이 떴고, 나는 금방 그녀와 매치되었다. 1마일 이내에 있다길래 근처인 게 분명했고, 나이도 동갑이었으니까. 섹스보다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었다. 5분... 10분... 시간이 지날 때마다 초조해졌다. 또 낚시일까 봐. 돌아갈 때는 택시 타고 편하게 가야겠다 생각하며 담배만 계속 피웠다.


스타벅스 앞에서 만난 그녀는 사진과 많이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차피 가방 속에 들어 있어서 보이지도 않을 콘돔과 러브젤을 더 격렬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늦었으니 밥을 사겠다는 말에 일말의 고민 없이 알겠다고 했다. 대창 먹어 봤냐는 말에 대창은 처음이라고 했었나. 대창 한 조각에 소주를 두세 잔은 마시고 또 담배만 계속 피우러 나갔다. 그래도 담배는 같이 피웠다. 다 먹고 나와 좀 걷겠냐는 질문에 있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로 대고 자리를 떴다. 나도 참 못난 놈이다. 양태준


네가 승자네?

강남에서 섹스는 처음이었으니까. 압구정 로데오에 놀러 갔다가 한 여자와 매치됐다. 사진만 봐도 귀티 나는 스타일.

"와 너 여기서 혼자 살아?" 발음하기도 어려운 와인을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 집에 들인 남자는 내가 처음이라던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와인도 마셔 본 놈이 알지 내가 뭘 알겠냐. 그냥 소주나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시답잖은 이야기나 주고받고는 침대에 누웠다. 누가 봐도 성형한 그녀의 얼굴이지만 그렇다고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 자취방에 퍼지던 은은한 무드등 불빛 때문이었던 걸까.


섹스할 때 노래 듣는 건 내 취향이 아니긴 하지만... 내 집도 아닌데 내 취향 따질 수는 없는 거니까.

무슨 R&B 음악을 들으며 섹스했다. 그녀 휴대폰은 침대 위에 뒤집어지지 않은 상태로 놓여 있었다.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고 우리는 섹스를 했고. 와중에도 그 휴대폰 액정에는 틴더 알림이 계속 떴다. 잠금 설정이 안 되어 있어서 메시지가 다 보였다. '어디예요?' '자취해요?' '오 매치됐다' '만날래요?' '제 거 볼래요?' 그녀는 자세를 바꿔 내 위에 올라왔다. 메시지를 보지도 않았지만 내용을 이미 대충 다 아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

"네가 승자네?" 이민형